김일성 시신 참배 무죄 선고했던 판사, 이번엔 불법 도로점거 시위 무죄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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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범위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박관근 부장판사 1심 벌금형 깨

법원이 서울 도심에서 편도 4차로를 점거한 김정우 전 쌍용차 노조 지부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박관근)는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 씨에게 벌금 150만 원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김 씨는 2011년 8월 2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개최해 진행 중이었던 노동자·시국대회에 참가했다. 이 집회는 오전 7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출발해 남대문, 서울역을 거쳐 용산구 남영 삼거리까지 약 3km를 진행방향 2개 차로를 이용해 행진하기로 돼 있었다. 민주노총은 이 같은 내용으로 경찰에 집회신고를 했다.

이날 김 씨를 비롯해 집회에 참가했던 700여 명은 한 시간가량 예정된 집회를 한 뒤 8시 10분경부터 신고 범위를 벗어난 지점인 용산구 갈월동 청룡빌딩 앞에서 40분 동안 “정리해고 철회하라”는 구호 등을 외치며 진행방향 4개 차로를 점거한 채 도로에 앉아 시위를 했다. 검찰은 김 씨가 다른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시위로 교통을 방해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심은 공소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당초 집회 신고를 했던 범위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이라 신고 범위를 크게 벗어났다고 단언하기 힘들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시위가 일요일 이른 아침에 이뤄져 교통량이 많지 않아 일시적으로 진행방향 전 차로를 점거했지만 반대방향 차로 통행에는 지장이 없었던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대해 법조인들 사이에선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차로를 점거해 통행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한 경우를 판단하는 기준이 매우 모호해 재판부마다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면서도 “집회 신고 지역이 아닌 곳에서 진행방향 전 차로를 시위대가 도로에 앉은 채 점거한 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준다면 논란이 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법원 관계자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입법 취지에 비춰 볼 때 일시적으로 신고 범위를 벗어나 시위를 했더라도 현저히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일반교통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는 북한 금수산 기념궁전의 김일성 시신을 참배한 행위에 대해 지난달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평소 이념적 편향성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의 단순 참배 행위를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고 속단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해 보수단체의 거센 비판을 사기도 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박관근 부장판사#불법 도로점거 시위#쌍용차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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