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살인범, CCTV는 피했어도 경관 ‘매의 눈’은 못 피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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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수사시대에도 검거 공신은 ‘관찰력’

이희경 경위
이희경 경위
‘군산에서 범행을 저질렀으면 한 번쯤은 인접한 논산을 거쳐 가지 않을까?’

전북 군산 여성 살인사건의 범인인 정완근 경사를 검거한 주역은 최근 만능 범죄 해결사로 떠오른 과학수사나 폐쇄회로(CC)TV가 아니었다. 사건과는 무관한 지역에 살고 있는 한 경찰관의 ‘매의 눈’ 같은 관찰력이었다.

2일 오후 6시 10분경 충남 논산시 취암동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도로. 쉬는 날이어서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던 부여경찰서 백강지구대 이희경 경위(45)는 30m 앞에서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는 한 남자를 봤다. 이 남성은 검은색 바지에 등산화, 파란색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옷은 땀에 흠뻑 젖었고 등산가방 양쪽 주머니에 물병이 꽂혀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이 경위는 페달을 밟아 남자를 지나치며 슬쩍 얼굴을 봤다. 검은 선글라스에 모자를 써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이 군산 사건 용의자 수배전단 속의 사진과 흡사했다. 요 며칠 ‘군산 사건의 용의자가 외지로 도주하려면 논산을 한 번쯤 거쳐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수배전단을 유심히 봐두었던 터였다.

수상한 남성은 인근 건물 2층 PC방으로 들어갔다. 땀을 잔뜩 흘린 상태에서 집이나 사우나 대신 PC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의심이 더욱 짙어진 이 경위는 논산지구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잠시 후 이 경위는 지구대 경찰 2명과 함께 PC방 구석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 그 남성에게 다가가 신분증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신분증이 없다”던 그 남성은 이 경위가 “군산경찰서 정 경사가 맞지 않느냐”고 다그치자 체념한 듯 두 손을 내밀었다. 군산에서 여성을 살해한 뒤 경찰의 대대적 수색을 비웃듯 열흘째 도피해 온 정 경사가 비번의 지구대 경관에게 붙잡힌 것이다.

이 경위는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주변에서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범인이 우리 지역을 지나갈지 모른다고 상정하고 평소에도 유심히 관찰을 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철저한 자료 조사와 동물적인 감각으로 범인을 검거하는 경찰들이 주목받고 있다.

올 5월 캐나다 여성을 빌라 계단에서 성폭행했던 범인을 검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서초경찰서 반포지구대 최병하 경위(45)는 평소 수배 용의자 수십 명의 사진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얼굴을 익히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빌라 성폭행 현장 인근의 CCTV에 찍힌 범인의 희미한 인상착의를 여러 차례 숙지했던 최 경위는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난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강남대로에서 용의자와 닮은 남성을 발견했다. 그는 그 남성이 담배꽁초를 버리자 경범죄 위반 단속을 하는 척 다가가서 이름과 나이, 주소를 확인한 뒤 성폭행 사건 담당부서에 신원을 알려줬다.

최 경위는 4일 “CCTV는 약간 퍼지게 나온 걸 아니까 평소 화면 속 범인보다 다소 날씬한 사람들도 유심히 봐 둔다. 동영상 속 용의자의 걸음걸이 등을 유심히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때와 장소에 따라 어떤 범인을 잡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용의자들 사진을 보고 ‘내 친구 누구랑 닮은 사람’이라고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그리고 사건 발생 인근 지역에 가면 꼭 유사한 사람들을 찾아본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첨단과학시대에도 경찰 개인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보느냐에 따라 첨단기기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채울 수 있다”며 “관심의 차이가 성패를 가른다”고 말했다.

논산=지명훈 기자·조동주 기자 mhjee@donga.com

#군산 여성 살인사건#살인범#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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