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컬처 IN 메트로]드라마 ‘상어’ 속 서촌 대오서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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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장 같은 1950년대풍의 한옥서점, 알고 보니 서울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63년째 대오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권오남 씨가 가득 쌓아둔 헌책 앞에 섰다. 1951년 스무 살 새색시였던 권 씨가 남편과 함께 시작한 서점이 어느새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이 됐다. 그는 “추억을 찾아 서점에 오는 사람들이 있어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63년째 대오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권오남 씨가 가득 쌓아둔 헌책 앞에 섰다. 1951년 스무 살 새색시였던 권 씨가 남편과 함께 시작한 서점이 어느새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이 됐다. 그는 “추억을 찾아 서점에 오는 사람들이 있어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KBS 2TV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상어’의 초반부에는 남녀 주인공이 고등학생이던 12년 전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드라마에는 고등학생 주인공들이 추억을 만들어가는 그림 같은 장소들이 등장한다. 그중 눈에 띄는 장소는 여고생 조해우(경수진 분)가 샤갈의 도록을 사려고 친구 한이수(연준석 분)와 함께 찾은 자그마한 헌책방이다.

헌책방은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대오서점’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서점’ 부분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지만 특유의 운치가 풍긴다. 두 주인공이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미닫이문을 열고 서점에 들어서면 조선시대 중인이 살았을 법한 아담한 한옥이 나온다. 대청마루, 처마 아래 등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책이 빽빽이 꽂혀 있다.

195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서점이어서 시청자들은 제작진이 만든 세트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서점은 종로구 서촌(통인·옥인·누하동 일대)에서 운영 중이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이다. 실제 이름도 ‘대오서점’이다. 가수 이승기의 ‘나에게 초대’ 뮤직비디오에서도 서촌을 산책하던 이승기가 들르는 헌책방으로 나왔다.

KBS 2TV 드라마 ‘상어’ 화면 캡처
KBS 2TV 드라마 ‘상어’ 화면 캡처
대오서점이 문을 연 건 1951년. 조대식 씨(1929∼1996)는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다쳐 돌아온 직후 자하문로 일대에 헌책방을 열었다. 조 씨는 권오남 씨(82)와 결혼한 뒤 누하동 한옥으로 이사하면서 한쪽 창고를 개조해 헌책방을 다시 열었다. 부부는 각자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따 서점 이름을 ‘대오’라고 지었다. 인근에 매동초, 청운초, 청운중, 경기상고 등 학교가 몰려 있어 서점은 싼값에 헌책을 사거나 책을 팔려는 학생들로 붐볐다. 서점이 인기를 끌면서 창고를 개조해 만든 헌책방에 책을 쌓아둘 공간이 없어지자 부부는 1평(3.3m²) 남짓한 한옥 현관에 책장을 짜 넣고 헌책을 가득 꽂아뒀다. 그러고도 공간이 부족하자 살림을 살던 한옥 내부 빈 공간마다 책장을 짜 넣고 책 선반을 만든 뒤 헌책을 켜켜이 쌓아두고 팔았다.

조 씨가 1996년 세상을 떠날 당시 헌책방 업종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권 씨는 헌책 1000여 권을 지인에게 주고 ‘창고 헌책방’도 세를 줬지만 한옥 현관과 집 곳곳에 쌓인 책은 그대로 둔 채 지금도 헌책방을 홀로 운영하고 있다. 서점에는 지금도 옛날 교과서, 1970, 80년대 가요집 등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권 씨는 “누군가 이곳에 찾아와 어린 시절 교과서를 보고 반가워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고 허름한 곳이지만 추억이 있는 공간이라며 카메라에 담아가는 게 고마워서 문을 닫지 못한다”라고 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300m를 직진해 나오는 형제마켓에서 좌회전. 참여연대 건물을 지나 작은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나온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대오서점#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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