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 일자리 시행중인 기업현장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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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로드맵’ 발표]
워킹맘 “아이 돌볼시간 늘어나 만족”… 미혼女 “월급 줄어도 여가 활용 장점”

“교준아, 일어나자. 어린이집 가야지.”

오전 8시 반. 박선희 KOTRA 인재경영실 과장(37·여)이 다섯 살 된 아들을 깨운다. 한두 번 불렀을 뿐인데도 교준이는 스스로 일어나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식탁 앞으로 걸어온다.

1년 전만 해도 박 과장은 아침마다 잠이 덜 깬 아들과 전쟁을 벌였다. 오전 7시면 “일어나기 싫다”고 이불 속에서 투정 부리는 아들을 달래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시켰다. 하지만 이제는 아침 시간을 촉박하게 보낼 필요가 없다. 그는 ‘단시간 근로제’ 전환을 신청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하루 6시간 30분 근무한다. 그래서 퇴근 후는 물론 아침에도 여유가 생겼다. 출근시간이 종전보다 한 시간 늦춰진 데다 직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해 통근에 드는 시간도 30분 줄었다. 박 과장은 오전 9시경 집을 나와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 뒤 걸어서 회사로 출근한다.

박 과장이 단시간 근로제를 신청한 것은 아이 때문이다. 친정어머니가 경북 포항시에서 올라와 6개월간 육아를 맡았지만 더 돌봐 달라고 부탁하기가 어려워 아이를 돌 무렵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다. 몇 년이 지나도 아침마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그는 올해 초 단시간 근로제를 신청했다. 박 과장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해가 떠있는 동안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며 “출퇴근 시간에 사람에 치이고 시간에 쫓기지 않는 것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KOTRA는 이처럼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의 일종인 단시간 근로제를 2011년 도입했다. 풀타임 근무에서 시간제 근무로 전환을 신청하면 월 급여가 25%가량 깎이지만 주당 근무시간은 40시간에서 30시간 안팎으로 줄어든다. 정규직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4대 사회보험과 복지 혜택 등도 차이가 없다. KOTRA 인사 담당자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원하는 직원들이 단시간 근로제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이미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한 민간 기업들도 있다. 지난해 3월 에어코리아에 입사해 총무, 구매관리 등의 일을 하는 김정진 씨(26·여)는 정규직 시간제 근로자다. 그의 하루 근무시간은 풀타임 직원들보다 2시간 적은 6시간이다. 그는 “어렵게 구한 첫 직장인데 남들보다 적게 일하는 게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지금은 더 많은 여가를 활용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 기업들이 공공기관처럼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 시간제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뽑았을 때 비용이 늘어나고 한번 고용하면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업무의 성격상 풀타임 직원이 맡아야 할 일을 시간제 일자리 직원에게 쪼개 맡기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노사발전재단에 따르면 정부가 2010년 시작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 지원 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기업은 4월 말 현재 1057곳, 대상자는 1만1198명이다. 그러나 실제로 급여 등을 지원받은 기업은 480곳, 근로자는 1659명에 그쳤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 논의, 근로시간 단축 등 현안을 안고 있는 민간 기업에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까지 늘리라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라며 “공공기관이 먼저 성공 사례를 만들고 민간이 자율적으로 따르게 하는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시간제 일자리#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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