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암각화 보존 vs 물 확보, 원점서 재논의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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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락 사회부 기자
정재락 사회부 기자
1998년 6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울산시청 3층 내무국장실에 박맹우 국장(현 울산시장)이 출근했다. 박 국장이 휴일에 출근한 건 업무뿐 아니라 ‘또 다른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 창틀에 날아오는 비둘기 한 쌍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였다. 울산광역시 승격(1997년 7월 15일)과 동시에 내무국장으로 부임한 그는 사무실 밖에 앉은 비둘기에게 먹다 남은 땅콩 부스러기를 줬다. 그랬더니 이 비둘기 한 쌍은 매일 비슷한 시간에 찾아왔다. 그는 ‘내가 출근하지 않으면 비둘기가 굶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휴일마다 사무실에 나왔다. 출장을 갈 때는 직원들에게 먹이를 챙겨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그의 성품과 관련한 일화 가운데 하나다.

그랬던 박 시장이 요즘은 “독해졌다”는 말을 듣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관심을 보인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보존 문제와 관련해서다. 문화재청은 ‘암각화 하류의 사연댐 수위를 낮춰 암각화 침수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밀어붙이는 상황. 이는 신임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교수 시절부터 반복해 온 논리다. 박 시장은 지난달 11일 문화재청 주관으로 열린 현장 설명회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사연댐 수위를 낮추면 울산시는 물이 모자라 낙동강에서 물을 끌어와야 한다. 댐 수위를 낮추면 홍수 때 유속이 빨라져 암각화가 더 훼손된다는 수리모형실험 결과도 있다”고 반박했다. 암각화 앞에 생태제방을 쌓으면 암각화도 보존하고 맑은 물도 확보할 수 있다는 평소의 생각도 전달했다. 22일 울산의 한 언론이 ‘청와대가 문화재청 방안대로 추진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박 시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확인 결과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문화재 보호 못지않게 맑은 물 공급도 중요하다’는 게 박 시장의 소신이다. 울산시민들도 박 시장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현재의 문화재청 관계자가 있는 한 울산시의 요구(생태제방 설치)가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울산시 역시 ‘맑은 물 공급’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한시적으로 휴전(休戰)을 선언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이 기간에 원점에서 암각화 보존과 맑은 물 확보 대책을 논의하라는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싼 문제가 원만히 마무리돼 ‘비둘기와 벗하는 부드러운 박 시장’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재락 사회부 기자 raks@donga.com
#울산#암각화#물 공급#문화재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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