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동서남북]외지인 예매 독점… 전주영화제서 소외되는 지역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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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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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오 호남·제주본부장
김광오 호남·제주본부장
전북 전주에 사는 50대 회사원 김모 씨는 영화 마니아다. 학창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 편 이상 영화를 본다. 주말에는 2, 3편씩 몰아 보기도 한다. 영화 팬인 그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싫다. 솔직히 영화제가 끝나기만 기다린다. 영화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제가 열리는 동안은 1년 중 그가 유일하게 영화를 볼 수 없는 기간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가 14회째이고 한 해에 200여 편의 영화가 상영되니 지금까지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만 줄잡아 3000여 편이나 된다. 이 가운데 그가 본 영화는 10편 이내다. 그것도 전주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영화는 없고 보는 사람이 거의 없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흘러간 영화 몇 편뿐이다. 현장예매를 하기 위해 몇 번 줄을 섰다가 실패한 뒤 아예 영화제 기간에는 영화 보기를 포기했다.

영화제조직위나 언론에서는 개·폐막작을 집중 홍보하지만 일반인이 개막작이나 프로그래머 추천 인기 영화를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터넷 예매는 몇 분 만에 끝나 버린다. 모든 영화가 매진은 아니니 찾아다니며 보면 될 것 아니냐고 하지만 내용이 검증되지 않은 실험적 영화에 무조건 두세 시간을 투자할 만큼 김 씨는 한가하지 못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김 씨의 지인들은 “영화제 기간에 ‘전주시민들도 영화 좀 보게 해 달라’고 시청에 가서 시위라도 하자”고 말한다.

전주영화제의 가장 눈에 띄는 손님은 수도권 대학 영화 전공 또는 영화 동아리 학생들이다. 이들은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 뛰어난 디지털 마인드로 볼만한 영화의 예매를 독점한다. 아날로그 세대의 지역 주민들이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들은 영화제 기간 전주의 찜질방에 머물면서 라면을 먹어가며 하루에 몇 편씩 영화를 본다.

전국의 1000여 개 지역축제가 대부분 상황이 비슷하다. ‘지역경제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주민들이 소외된다. 세계인이 찾는 축제라고 홍보하기 위해 주한 아프리카 국가 대사관 직원들을 축제마다 초청하는 일도 흔하다. 주민들은 축제를 즐기는 주체가 아니고 손님맞이 준비를 도맡고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객체로 전락했다.

지역 주민들을 소외시키고 주민이 즐길 수 없는 축제를 엄청난 주민 혈세를 들여가며 해야 될 이유는 없다. 설사 경제적 효과가 있더라도 이런 축제가 오래갈 수는 없다. 전주영화제에는 14년 동안 374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고 시비 지원액만도 169억 원이나 된다. 기반시설 정비와 행정력 지원을 포함하면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나지만 투입한 만큼이라도 지역경제에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검증된 적은 없다. 우리 국민들이 몇몇 외지 손님들을 위해 일주일 이상 차도 못 굴리고 집 안에 갇혀 있을 만큼 인내심이 높지도 않다. 영화제의 성공 포인트는 “외지인 몇 사람이 얼마를 쓰고 갔다”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시민이 영화를 보고 즐겼느냐”가 돼야 할 것이다. 지역 축제에 대한 자치단체장들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올해도 전주의 영화광 김 씨가 영화를 볼 수 없는 전주국제영화제는 25일 시작해 5월 3일 끝난다.

김광오 호남·제주본부장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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