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토종벌 실종 사건’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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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바이러스질병 2010년부터 창궐… “100마리 중 2마리만 생존” 분석도
서양벌로 대체 못해 생태계 파괴 우려

산과 들에서 토종벌이 사라지고 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 질병인 낭충봉화부패병이 2010년부터 번지면서 3년 만에 토종벌 100마리 중 2마리 정도만 살아남았다는 비관적 분석이 나오고 있다.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봉업계와 관련 학계에서는 한봉산업 위축 외에도 식물 번식에도 악영향을 끼쳐 생태계 전반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토종벌 씨 마르는데 통계는 ‘고무줄’

대한한봉협회 전남지부는 2010년 상반기 전국 토종벌은 36만 군으로 이 가운데 전북이 13만4584군, 전남은 9만2700군을 키웠다고 밝혔다. 호남에서 전국 토종벌 63%를 키운 것이다. 1군은 여왕벌 한 마리가 건강한 일벌 2만5000∼3만 마리를 거느리는 벌통 1개를 의미한다. 전남지부는 2010년 5월부터 낭충봉화부패병이 창궐하면서 2011년과 2012년 전국적으로 토종벌이 1만 군 이하만 살아남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전국 토종벌이 2009년 38만 군, 2010년 17만1300군, 2011년 10만700군이라고 밝혔다. 전국 토종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전남북 지방자치단체가 밝힌 생존 토종벌 개체 수는 농림부 통계와 큰 차이를 보인다. 전남도는 2011년 2000군, 2012년 1600군이 남았고 전북도는 2011년 585군, 2012년 1043군이 살아남았다고 밝혔다. 정부와 자치단체 통계가 크게 다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농림부의 ‘2011년 생존 토종벌 10만7000군’이 어떻게 집계됐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 정부 연구기관 관계자는 “한봉 농가들은 토종벌이 폐사해도 보상을 받지 못하자 신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전국적으로 1만 군가량 살아남은 것 같다”고 밝혔다. 정부 연구기관도 토종벌이 2010년에 비해 5% 이하만 생존했다고 분석했다. 이성희 대한한봉협회 전남지부장은 “마을 이장에게 공문을 보내는 방식의 형식적인 조사가 이뤄져 토종벌이 얼마나 생존했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전국적으로 5000군 이하가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남만 7500억 원 손실

토종벌은 전체 길이 1.5∼1.7cm, 서양벌은 1.7∼2cm 정도다. 꿀 생산력은 서양벌이 네 배 많지만 토종벌이 추위에 훨씬 강하다.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꿀벌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꿀벌이 과일·채소를 열리게 하는 화분매개체 역할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6조 원”이라고 밝혔다. 서양벌은 4조5000억 원, 토종벌은 1조5000억 원으로 분석했다. 분석대로라면 호남에서는 토종벌이 사라져 75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 셈이다. 정 교수는 “사라진 토종벌 대신 서양벌이 화분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좋아하는 꽃의 종류가 다르다”며 “그 외 희귀식물 번식과 말벌·거미·새 등 포식자 먹이사슬에 미친 악영향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토종벌이 대량 폐사한 직후 2011년 호남지역 호박, 매실, 복숭아, 단감 수확량이 감소했다. 토종벌이 사라진 과수원에는 서양벌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박한주 순천시 농업기술센터 경제작물담당은 “토종벌이 사라진 이후 매실 수확량이 2∼3% 감소한 것 같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토종벌 생존을 위해 개량벌통과 면역 증가제를 보급하고 있다. 또 토종벌 종자번식을 위한 사업도 지원하고 있다. 한봉 농가도 등록제로 전문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확한 피해 실태 조사가 선결 과제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특별한 치료약이 없어 개량벌통과 면역증가제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며 “1970년대 베트남에서도 낭충봉화부패병이 유행했지만 이런 노력으로 20여 년 만에 극복했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토종벌#낭충봉화부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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