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여기는 신문박물관]호외를 보면 그 시절 大사건이 눈앞에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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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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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주선 제미니 8호와 아제나 로켓이 사상 처음으로 도킹에 성공했다는 소식. 동아일보가 1966년 3월 17일 발행한 호외에 나왔다. 신문박물관 제공
미국 우주선 제미니 8호와 아제나 로켓이 사상 처음으로 도킹에 성공했다는 소식. 동아일보가 1966년 3월 17일 발행한 호외에 나왔다. 신문박물관 제공
신문은 일보(日報) 주보(週報) 순보(旬報)처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발행합니다. 이와 별도로 중요한 뉴스를 빨리 전하기 위해 호외(號外)를 만듭니다. 임시로 특별히 발행하는 신문(extra edition)입니다. 방송과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신문사가 이런 호외를 종종 발행했습니다. 신문판매원이 거리를 뛰어다니며 이렇게 외쳤지요. “호외요! 호외요!”

한말 근대 신문이 창간되면서 속보성과 상관없는 내용이나 해외 소식 몇 가지를 제외하면 조선신보가 보도한 ‘일본군 경복궁 급습사건-갑오변란’(1894년 7월 23일)이 국내 최초의 호외로 기록돼 있습니다. 또 대한매일신보가 △을사늑약 체결 전말(1905년 11월) △헤이그밀사 사건, 고종 황제 강제 퇴위(1907년 7월) 같은 중대 보도를 했습니다.

본격적인 호외 발행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창간된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1920년대는 주로 항일운동, 1930년대 후반은 중일전쟁과 관련한 호외가 대부분이었습니다. 1940년에서 광복 전까지는 모든 신문이 폐간돼 호외가 없었습니다. 광복 후 1950년대까지는 몇 개의 호외만 남아 있습니다.

유일한 속보 수단으로 많은 호외를 발행했던 시기는 1960년대입니다. 습격, 납치, 총기사건, 대형 화재, 지도자 사망, 남북 관계가 단골 주제였습니다. 중학입시 모의답안, 통금시간 단축, 학습지, 고교 입시, 교사인사 등 호외 본연의 성격과는 다소 거리가 먼 내용도 적지 않았습니다. 어린이 신문도 호외를 발행한 적이 있습니다. 1970년대 이후 텔레비전이 대중화되면서 호외는 방송과의 속보전쟁에서 밀렸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른 후 1990년대부터는 호외를 발행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인간은 1950년대 중반부터 우주비행의 꿈을 꿨습니다. 1960년대에 소련과 미국이 수차례 유인 또는 무인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합니다. 미국이 만든 아폴로 11호가 1969년 7월 21일 달에 인류의 첫발자국을 찍었습니다. ‘여기는 이른 아침 달平原 저쪽 서산에 해가 뜬다―닐 암스트롱.’ 새 역사가 생긴 순간, 국내외 신문사는 호외를 발행했습니다.

한국은 올해 1월 30일 나로호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 우주시대를 열다’ 1960년대라면 당연히 호외를 발행할 만한 일이겠죠?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였던 순간이었지만 호외 대신 방송과 인터넷이 먼저 소식을 알렸습니다.

국내 근대 신문에 첫 호외가 출현하고 1세기가 지났습니다. 호외가 사라졌지만 사건사고는 사라지지 않겠죠. 소식을 전하는 수단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동아일보와 동아닷컴은 독자 여러분에게 가장 빠른 눈과 귀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이문순 신문박물관 교육사
#일보#주보#순보#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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