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지하철에 치여 죽는데” 셔터만 누른 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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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그에게 내민 구원의 손은 없었다

사진기자는 찍기만 하고… 3일 미국 뉴욕 지하철역에서 한기석 씨가 자신을 철로로 떠민 30대 흑인 용의자와 언쟁을 벌이고 있다(왼쪽 사진). 잠시 후 철로에 떨어진 한 씨가 철로에서 올라오려고 하는 사이 지하철이 다가오고 있다. 뉴욕포스트는 프리랜서 사진 기자 우마 압바시가 찍은 이 장면을 4일자 1면에 실었다. 사진 출처 CNN·뉴욕포스트
사진기자는 찍기만 하고… 3일 미국 뉴욕 지하철역에서 한기석 씨가 자신을 철로로 떠민 30대 흑인 용의자와 언쟁을 벌이고 있다(왼쪽 사진). 잠시 후 철로에 떨어진 한 씨가 철로에서 올라오려고 하는 사이 지하철이 다가오고 있다. 뉴욕포스트는 프리랜서 사진 기자 우마 압바시가 찍은 이 장면을 4일자 1면에 실었다. 사진 출처 CNN·뉴욕포스트
‘떼밀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이 남자, 죽음을 앞두고 있다.’

미국 뉴욕의 유력 지역 언론인 뉴욕포스트는 4일(현지 시간)자 1면에 이런 제목과 함께 한 남성이 불과 몇 m 앞에 다가온 지하철을 바라보며 철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처절한 장면을 찍은 대형 사진을 전면으로 보도했다. 선정적인 제목과 충격적인 내용에 뉴욕 사회는 경악했다.

사진 속 비운의 주인공인 재미교포 한기석 씨(58·사진)는 3일 낮 12시 반 뉴욕 맨해튼 지하철 ‘49스트리트역’ 승강장에서 30대 흑인 남성과 언쟁을 벌인 뒤 흑인에게 떼밀려 철로 아래로 떨어졌다. 잠시 뒤 지하철은 빠르게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뉴욕 지하철은 한국과 달리 전동차 아래 공간과 옆 공간이 없다. 한 씨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철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지하철역 어느 승객도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승강장은 철로보다 1m15cm 높아 주위 도움이 없으면 쉽게 올라오기 어렵다. 지하철에 치인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부인과 대학생 딸을 두고 숨졌다. 9·11테러 때 뉴요커들은 자신의 몸을 던지며 인명을 구했지만 이날만은 영웅이 없었다.

뉴욕포스트의 이날 보도는 미디어와 누리꾼 사이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오후 인터넷판에서 뉴욕포스트에 “꼭 이런 사진을 실어야 했느냐”고 비판하며 “선정성과 흥미만을 추구하는 황색 저널리즘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뉴욕포스트는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 소유 미디어 그룹 뉴스코퍼레이션 자회사다.

NYT에는 “이 사진을 찍은 기자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를 구조했어야 했다”는 내용의 글이 폭주했다. 이 사진을 촬영한 뉴욕포스트 프리랜서 기자 우마 압바시는 한 씨가 철로에 떨어져 있는 1분∼1분 30초 사이 49차례나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이에 대해 우마 압바시는 “그를 끌어올릴 힘이 없었다. 지하철 기관사가 볼 수 있게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뉴욕경찰국(NYPD)은 사고가 발생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4일 20대 흑인 용의자 나임 데이비스(30)를 검거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용의자가 “여기서 꺼져” “미친 짓 하지 마”라고 소리치더니 전동차가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한 씨를 밀었다고 끔찍한 순간을 전했다. 현장에서 한 씨를 응급 치료한 베스 이스라엘 메디컬센터의 의사 로라 캐플런 씨는 ABC뉴스 계열사인 WABC에 “한 씨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다른 승객들을 괴롭히던 용의자에게 맞섰다. 알지도 못하는 다른 승객들을 보호하려 한 용감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NYPD는 용의자가 정신이상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채널A 영상] “열차 멈추려 플래시 49번 터뜨렸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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