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미래로 2012 대학 탐방]한국과학 미래 밝힐 잠룡, 대구경북과학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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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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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자락에 첨단연구 캠퍼스

‘국가과학자’인 남홍길 DGIST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교육과학기술부 기초과학연구단인 식물 노화 수명연구 실험실에서 대학원생들에게 식물 유전자를 설명하고 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국가과학자’인 남홍길 DGIST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교육과학기술부 기초과학연구단인 식물 노화 수명연구 실험실에서 대학원생들에게 식물 유전자를 설명하고 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도전 열정에 불을 붙여준 곳’(박사과정 학생) ‘한마디로 문화 충격’(석사과정 학생) ‘과학의 새 흐름을 이끌어낼 잠재력 덩어리’(교수) ‘목표 지향적 능동학습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마당’(기초학부 교수) ‘대구와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고교 교장) ‘멋진 과학자가 되는 꿈을 이룰 대학’(고교 2학년)….

대구 비슬산 자락에 있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DGIST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를 열 ‘잠룡(潛龍)’으로 불린다. 아직은 물속에서 꿈틀거리지만 차근차근 실력을 쌓으며 하늘로 날아오를 ‘때’를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 비슬산의 꿈 키우는 잠재력

비슬산의 DGIST는 삼국유사를 쓴 보각국사 일연(1206∼1289)을 모델처럼 여긴다. 삼국유사는 비슬산에서 잉태된 걸작. 20대의 일연은 비슬산 정상에 있었던 신라 고찰 대견사(大見寺)에 머물며 30년 넘게 삼국유사를 구상했다. 일연은 사찰 이름대로 ‘크게 본다’(대견)는 뜻을 되새기며 수천 년 민족사를 디자인했는지도 모른다. 비슬(琵瑟)은 ‘큰 거문고를 연주한다’는 뜻이어서 삼국유사는 일연이 수십 년 동안 공들여 낳은 ‘악보’인 셈이다.

DGIST에는 비슬산이 품고 있는 이런 거대한 잠재력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캠퍼스 뒤쪽으로 펼쳐진 비슬산을 바라보면 마치 나침반이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듯 DGIST와 비슬산이 맞닿아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대견봉에 서면 뒤쪽으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앞으론 첨단 산업단지인 대구테크노폴리스 조성 현장이 펼쳐진다. 축구장 1000배 크기로 내년 6월 완공 예정인 테크노폴리스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첨단업종 기업이 줄지어 들어서는 인구 5만 명 규모의 신도시가 곧 모습을 드러낸다. 상전벽해 그대로다.

“인생의 도전과 학교의 도전을 함께 만들어가는 하루하루가 정말 가슴 뜁니다. 훌륭한 전통을 쌓아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이 절로 생기죠. 좋은 여건에서 공부에 몰입할 때면 더욱 그렇고요.” 지난해 박사과정에 입학해 뇌과학을 전공하는 이재면 씨(31)는 학교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만 해도 주변이 황무지 같았는데 1년 만에 이렇게 달라졌다”며 “상전벽해가 바로 여기”라고 말했다. 에너지시스템공학을 전공하는 석사과정 안태은 씨(23·여)는 “노벨상 수상자와의 만남 등 이전에는 거의 접해 보지 못했던 교육환경이 무엇보다 풍성하다”며 “전공 공부를 포함해 생활의 모든 면을 스스로 하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연구 기능을 수행해온 DGIST는 지난해 대학원 과정을 개설했다. 현재 130여 명이 △신물질과학 △정보통신융합공학 △로봇공학 △에너지시스템공학 △뇌과학 등 5개 전공으로 나눠 공부한다. 내년에는 차세대생명과학 전공이 생긴다. 교수와 연구원 250여 명은 올해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75편, 연구기술을 기업 등에 이전하고 받는 수입 6억 원, 특허 등록 100건을 기록할 예정이다. 모두 2010년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부설기관으로 유치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뇌연구원이 2014년부터 운영되면 연구 역량은 껑충 뛸 것이다. 세계 3대 기초과학연구소로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13명 배출한 미국 로런스버클리 국립연구소도 올해 7월 협력센터를 열었다.

○ 융·복합형 인재의 숲, 학사과정 개설

2014년 3월 개설하는 학사과정(융·복합대학 기초학부)은 DGIST가 날아오를 큰 날개다. 내년부터 전국의 과학 꿈나무 200명을 선발하기 위해 교직원과 연구원, 대학원생들이 물 뿌리고 마당 쓸며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쏟고 있다. ‘국가과학자’인 남홍길 교수(55·교육과학기술부 기초과학연구단장)가 말하는 인재의 모습은 이렇다.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 아니라 문제를 찾고 만들어낼 수 있는 호기심 넘치는 학생, 지능지수보다는 가슴으로 과학의 세계를 품는 사람이 DGIST와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봅니다. 내 경험에 비춰 봐도 지능지수보다는 호기심과 도전정신, 열정 넘치는 학생이 결국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이런 멋진 삶을 가꾸고 싶은 인재들은 DGIST에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남 교수는 “학문의 융합과 복합이라는 말은 쉽지만 명실상부한 추진은 굉장히 어렵다”며 “시행착오 없이 융·복합 분위기가 캠퍼스 구석구석에 넘치도록 하는 데는 DGIST처럼 새로운 그릇이 제격”이라고 말했다.

기초학부 학사과정은 1∼3학년에 전공이 없다. 기초과학을 비롯해 인문사회, 예체능을 통해 학생 한 명 한 명이 ‘제2의 탄생’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한다. DGIST 입구에 있는 포산고 김호경 교장(56)은 “늘 DGIST를 보면서 우리 학생들을 많이 진학시키고 싶은 욕심이 든다”고 했다. 포산고는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의 미래학교에 선정된 명문고다. 포산(苞山)은 비슬산의 옛 이름. 김 교장은 “학생 10명이 DGIST 교수들과 6개월째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학생에 대한 투자가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최경호 기초학부 책임교수(52)는 “융·복합적 공부가 무엇인지 입학해보면 느낄 수 있도록 최고의 환경을 만들고 있다”며 “리더십을 갖춘 과학자로 반듯하게 성장하고 싶은 학생에게 DGIST는 경계가 없는 운동장”이라고 말했다.

DGIST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6, 7일 대구전시컨벤션센터(엑스코)에서 열리는 ‘DGIST 글로벌 혁신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뇌과학과 정보통신, 로봇 등 핵심 5개 분야에 국내외 석학과 기업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가해 초일류 융·복합 연구중심대학이라는 꿈을 현실로 바꾸고 있는 DGIST의 비전을 함께 여는 마당이다.
▼ “학부생 200명 첫선발에 맘 설레, 大邱는 큰 언덕… 맘껏 기대세요” ▼

■ 신성철 DGIST 총장


신성철 DGIST 총장(60·사진)은 세계적 물리학자이지만 지난해 3월 총장을 맡은 후 스스로 놀랄 만큼 변화를 겪었다. 무엇보다 ‘물리학 너머’(메타피직스)를 고민하는 철학적 태도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는 올해 7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으며 미국 물리학회 석학회원(전체 회원 5만여 명 가운데 0.3%)이다.

그의 변화와 성장은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유사한 점이 많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학문인 물리학의 배후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형이상학을 개척했다. 신 총장도 전공인 자기체(磁氣體·자석의 성질을 가진 물질)를 넘어 더 넓고 깊은 세계에 귀를 기울인다. DGIST를 만나면서 이 같은 차원에 눈을 떴다고 한다.

“비슬산 정상 대견봉에 서면 가슴이 뜁니다. DGIST가 어떻게 창공을 힘차게 날아오르도록 할까 같은 설렘에 온갖 비전이 떠올라요. 크고 높게 본다는 ‘대견’의 뜻처럼 내가 과연 DGIST를 위해 어떤 큰 그림을 그릴까 하는 뭉클함 같은 것이죠.”

20년 동안 KAIST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대덕연구단지의 발전을 지켜본 신 총장은 대구의 새 출발에 각별한 의미를 담았다. 그는 “대전(大田)은 큰 밭, 대구(大邱)는 큰 언덕이라는 뜻이 묘하게 맞물린다”며 “밭에 씨를 뿌리고 결실을 봐 모두 기댈 수 있는 언덕이라는 생각에 여기가 풍성한 인재의 숲을 이룰 것 같은 기대감이 솟는다”고 했다.

신 총장은 전공을 인용해 자신의 리더십을 ‘자석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자석의 당기는 힘과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처럼 인재를 당기고 세계적인 융·복합 대학이라는 방향을 반듯하게 일구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융(融)은 따뜻하게 녹여내고 화합해 크게 성장시킨다는 뜻이고, 복(複)은 새 옷을 입는다는 뜻”이라며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DGIST의 융·복합 가치는 자석 덩어리인 지구라는 나침반에 정확하게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부터 학부생을 선발하는 기대감에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라고 좋아했다. ‘대구’라는 지명에 어울리도록 DGIST는 학부 신입생들이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큰 언덕이 되어 주고, 학생들은 훗날 세상이 기댈 수 있는 큰 언덕 같은 인재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신 총장은 “나 자신의 생각과 삶이 하나씩 융·복합적으로 바뀌는 듯하다”며 “DGIST라는 큰 바다를 헤엄칠 학부생은 200개의 비슬산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대구경북과학기술원#비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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