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영웅 올해만 6명 잃어…무엇이 그들을 死地로 내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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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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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도 유족도 눈물의 영결식 인천 부평구 청천동 물류창고 이랜드월드 지하 2층에서 2일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던 도중 숨진 김영수 소방경의 영결식이 5일 오전 9시 인천 부평구 부평소방서에서 열렸다.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영결식에서 인천 공단소방서 소속 이현철 소방장이 눈물을 흘리며 고인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왼쪽). 유족은 김 소방경의 관을 
붙들고 오열했다(오른쪽). 고인의 유해는 인천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된 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인천=연합뉴스
동료도 유족도 눈물의 영결식 인천 부평구 청천동 물류창고 이랜드월드 지하 2층에서 2일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던 도중 숨진 김영수 소방경의 영결식이 5일 오전 9시 인천 부평구 부평소방서에서 열렸다.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영결식에서 인천 공단소방서 소속 이현철 소방장이 눈물을 흘리며 고인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왼쪽). 유족은 김 소방경의 관을 붙들고 오열했다(오른쪽). 고인의 유해는 인천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된 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인천=연합뉴스
“갈산 하나, 현재 어디인가?”(부평소방서 현장지휘대 소속 한 소방경)

“(지하) 3층.”(고 김영수 소방경)

故김영수 소방경
故김영수 소방경
2일 오후 9시 3분, 부평소방서 갈산 119안전센터 소속 김영수 소방경(54)은 6번이나 무전으로 그를 찾던 현장 지휘관의 다급한 물음에 짧게 응답했다. 지상과의 마지막 교신이었다. 김 소방경은 오후 8시 35분경 2명의 동료와 인천 부평의 한 지하창고 화재 현장에서 지하 2층으로 내려간 뒤 3일 오전 2시 50분경 주검으로 발견됐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지하 화재 현장은 단독 작업을 해선 안 되지만 김 소방경이 일에 몰두하다 보니 다른 동료들과 떨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지하 2층에 있었는데 지하 3층이라고 말한 것은 응답 시점에 이미 출구를 찾지 못해 당황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또 한 명의 소방관이 2일 화마와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올해로 6명째다. 전문가들은 턱없이 부족한 소방장비와 인력, 제대로 소방관을 지켜주기 힘든 현장 대응 매뉴얼을 개선하지 않고선 언제든 제2, 제3의 김 소방경과 같은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 사명감만으로 버티기 힘든 현실

함께 일하던 동료를 잃은 인천 지역의 한 소방관(43)은 “몸에 걸치는 장비 무게가 25kg에 달하는데 한 번 출동해 현장에서 2∼3시간 작전을 펼치면 체력이 한계에 이른다”며 “교체가 필요한 장비를 들고 현장에 나설 때면 사선에 선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소방관들의 공기호흡기나 방화복 등 안전장비의 부족 및 노후화는 사고 때마다 지적돼 왔지만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개인장비는 필요한 양보다 17.3%가 부족하며, 지급된 개인안전장비 중 사용 연한을 초과한 노후 장비도 전체의 15.4%나 된다. 정부는 지난해 말 안전장비 보충 및 노후장비 교체를 위해 예산을 편성했지만 올 초 국회가 전액 삭감했다.

열악한 처우도 소방관들의 사기를 꺾고 있다. 현재 소방공무원 1인당 담당 국민 수는 1208명으로 일본(820명), 프랑스(1029명), 미국(1075명) 등에 비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위험수당은 2008년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오른 뒤 제자리이고, 화재진압수당도 2001년 4만 원에서 8만 원으로 오른 뒤 11년째 동결되어 있다.

열악한 근무 여건 탓에 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2010년과 2011년 각각 8명의 소방관이 순직했고 올해에도 벌써 6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도 2010년 340명, 2011년 355명이며 올해에도 174명이나 된다.

○ 소방관 목숨을 최우선시해야


이번 사고를 계기로 매뉴얼과 장비 개선을 통해 소방관들이 사지로 몰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처럼 엄청난 양의 유독가스가 발생되고 열에 취약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특징을 가진 대형 물류창고와 같은 곳에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 소방관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형주 경원대 소방방재공학과 교수는 “화재 발생 시 물류창고 내에 구조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진입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절대 건물 안으로 들어가선 안 되도록 매뉴얼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소방당국의 대응 매뉴얼을 보면 대형 물류창고에 화재가 났을 경우 건물을 부숴서라도 우선 환기를 시켜 건물 내부에 가득 찬 농연(짙은 유독가스)과 열을 빼내도록 되어 있다. 이 조치가 선행되지 않으면 소방관은 건물로 진입할 수 없다.

급박한 화재 현장에서 활동하는 소방관의 안전을 위해 장비 개선도 필요하다. 사고 당시 김 소방경이 메고 있었던 공기호흡기는 50분가량 쓸 수 있는 용량이었지만 실제 현장에서 활동을 하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35∼40분 정도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90분까지 쓸 수 있는 공기호흡기를 배치해 사용하고 있다.

김 소방경이 사용했던 공기호흡기에는 자신의 위치를 표시할 수 있는 위치표시등과 공기 잔량이 15% 이하로 떨어지면 울리는 경보장치가 부착돼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위치나 위급한 상황을 알리지 못했다. 한 전문가는 “대형 건물로 들어간 소방관의 위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방식의 위치수신기가 현장에 공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방재청은 방호복에 센서를 달아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의 위치와 호흡 맥박 등 신체상태를 외부에서 실시간으로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내년까지 개발 완료해 도입할 방침이다.

한편 하루 종일 가을비가 내린 5일 인천 부평소방서에서는 김 소방경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그의 부인은 기도하듯 영결식 내내 두 손을 꼭 모은 채 눈물을 쏟아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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