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불화 깊은데… EU가 받은 이유 뭐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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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공동체 최초 노벨평화상… 자격 논란

유럽연합(EU)이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EU가 재정위기에 허덕이는 데다 세계경제 침체의 한 축이라고 지목받는 상황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는 게 합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유럽의 부채 위기를 촉발한 남부 유럽과 부유한 북부 유럽 간 ‘유로존 분리’ 등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EU의 단결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시점이라는 점도 논란을 부채질하는 원인이다.

이런 논란은 EU 회원국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EU 탈퇴를 고려하는 영국 보수정당인 영국독립당 당수 나이절 퍼레이즈는 12일 “최근 2년간 EU는 남유럽과 북유럽 사이에 엄청난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며 “노르웨이인이 정말 유머를 가진 사람들이란 것을 보여줬다”고 비아냥댔다.

재정긴축 압박을 받고 있는 그리스와 스페인의 반응도 냉담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3년 전 실직한 전직 미용사 크리소울라 파나지오티디 씨(36)는 “농담 하느냐”고 되물으며 “EU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그리스인을 격노케 한다”고 말했다. 올해 유력한 후보자 중 한 명이던 러시아 인권운동가 류드밀라 알렉세예바 씨(85)는 “이란의 정치범들에게 평화상이 수여됐다면 이해가 됐을 것”이라며 EU의 수상을 비판했다.

노벨상 가운데 유일하게 노르웨이에서 선정되는 평화상이 EU에 돌아간 것은 그동안 주권 침해를 이유로 2차례나 EU 가입을 거부한 노르웨이 국민의 처지에서는 다소 곤혹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논란은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받았을 때도 불거졌다. 노벨위원회는 오바마 대통령의 국제외교 강화 노력을 평가했지만 당시는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첫해였다.

물론 EU의 성과를 간과할 수는 없다. 토르비에른 야글란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70년간 3번의 전쟁을 치른 독일과 프랑스의 오늘을 보라. 상호 신뢰를 쌓는다면 ‘역사적인 적’도 가장 가까운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또 EU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공산국가들의 민주화에 기여하며 인종 청소와 종교 갈등으로 오랜 기간 내전에 시달린 보스니아, 코소보 사태 해결은 물론이고 지난해 ‘아랍의 봄’의 하이라이트였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독재정권 퇴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노벨 평화상 수상은 부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EU의 사기를 북돋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 통합의 가장 큰 수혜자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유로화를 화폐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시상식은 노벨상 창설자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사망일인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며 메달과 함께 800만 스웨덴크로나(약 14억20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지난해까지 1000만 크로나였던 상금은 재단의 재정 사정 악화로 20% 줄었다. 그동안의 수상자나 단체들과는 성격이 다른 지역공동체가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는 점에서 상금과 메달을 누가 받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제적 고통을 받는 그리스나 스페인에 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고 일부 외신이 전했다.

43개 단체를 포함해 231명이 이번 노벨 평화상 후보로 경쟁했다. 벨라루스의 민주화운동가 알레스 벨리야츠키, 러시아 민주화운동가 알렉세예바, 비폭력운동을 주장해온 미국 정치학자 진 샤프 등이 주요 후보였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노벨평화상#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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