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의 작별파티에 그대를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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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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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날… 故 이계조 원장의 ‘준비하는 죽음’ 화제

(위) 2010년 10월 2일 고 이계조 씨가 고별파티 때 액자선물을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액자 속 꽃 사진은 이 씨가 취미로 찍어 블로그에 올려놓은 것. 친구들이 이를 출력해 액자에 넣었다. (아래) “장례식장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던 이계조 씨의 바람대로 40여 명의 지인들이 고별파티에 모였다. 이 씨와의 인연을 회고하면서 마지막엔 모두 웃으며 헤어졌다. 김기환 씨 제공
(위) 2010년 10월 2일 고 이계조 씨가 고별파티 때 액자선물을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액자 속 꽃 사진은 이 씨가 취미로 찍어 블로그에 올려놓은 것. 친구들이 이를 출력해 액자에 넣었다. (아래) “장례식장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던 이계조 씨의 바람대로 40여 명의 지인들이 고별파티에 모였다. 이 씨와의 인연을 회고하면서 마지막엔 모두 웃으며 헤어졌다. 김기환 씨 제공
미국에서 활동하는 목사 김기환 씨(49)는 캘리포니아 주 부에나파크 린제이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9월 4일부터 29일까지 세라믹 작가 5명 및 다른 사진작가 3명과 함께였다.

전문 예술인은 아니지만 사진촬영과 블로그 활동에 열정적인 사실이 알려져 전시회에 초대받았다. 그는 최근 찍은 작품을 엄선해서 보냈다.

그의 블로그에는 아프고 힘든 일을 겪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작품이 특히 많다. ‘삶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셨나요?’라는 글에는 모진 파도로 인해 반들반들하게 닳은 자갈 사진을 함께 올려놓는 식이다. 항암치료를 받아 완치단계에 이른 30대 청년을 축하하는 사진에는 ‘하루를 호흡하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있음을 기념하며’라는 글귀를 붙였다.

김 씨가 지인들에게 보내는 메일에는 이런 문구가 담긴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그는 자신이 이렇게 삶의 소중함, 오늘의 행복을 강조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2년 전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꾼 파티를 언급했다.

○ 갑작스럽게 찾아온 마지막

김 씨는 2010년 10월 2일 특별한 모임에 초대됐다. 그를 포함해 40여 명이 초대받았다. 이계조 전 한미문화교육원장이 준비한 자리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헌팅턴비치의 일식당에서 오전 11시부터 시작됐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도록 이 씨가 이름표를 모두의 가슴에 붙여줬다.

이 씨가 입을 열었다. “내가 죽은 뒤에 와서 먹고 마시는 장례식을 원치 않습니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웃으며 떠나고 싶습니다.”

이날 모임은 이 씨가 생을 마감하는 고별파티였던 셈이다. 이에 앞서 4월에 이 씨는 폐암말기 선고를 받았다. 등산 도중에 어지러워 쓰러졌다. 의사는 이미 암이 많이 퍼져 있다고 했다. 평소 건강에 자신이 있었는데….

충격은 컸다. 그동안 어깨가 아파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엉뚱한 일만 했다는 후회도 들었다. 몰려오는 슬픔.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었다. 주변을 정리했다. 평생 간직했던 음반을 주변사람에게 나눠줬다. 전화를 걸어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져가라”고도 했다.

집기를 정리하면서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 그들이 보고 싶었다. 명단을 작성했다. 앞으로 보지 못할 그들. 더 늦춰선 안 되겠다. 그가 고별파티를 준비한 이유다.

초청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제가 가는 고향길, 눈 속에서도, 함박눈이 쌓인 싸리울에도 따뜻한 사랑의 꽃, 등불을 밝혀주셔서 저는 참으로 평안합니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 “장례식에 밝은 색 옷을 입고 와 달라”

이 씨는 젊었을 때 미국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재미교포 2세를 위해 상담을 많이 했었다. 당시 만난 학생들이 고별파티에서 울먹이자 이 씨는 “이렇게 좋은 날 왜 우나. 나는 지금 아주 행복하다”며 달랬다.

옛날 일을 이야기하면서 파티는 점점 흥겨워졌다. 웃고 마시고 떠들다보니 시곗바늘은 어느덧 오후 3시를 가리켰다.

이제 이별할 시간. 이 씨는 평소 좋아하던 요요마의 첼로연주 음반을 한 장씩 선물로 돌렸다. 친구들은 꽃 사진을 넣은 액자를 선물했다. 이 씨가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죽으면 검은 정장을 입는데, 그러지 마세요. 제 장례식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와 주세요.”

고별파티 이후 이 씨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하반신이 마비됐다. 말을 잇기도 버거워졌다. 빨리 회복해서 일어나라는 주변의 위로도 증상을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지독한 통증은 마지막을 더욱 힘들게 했다.

보름 정도 지나고 이 씨는 세상을 떠났다. 눈을 감기 전, 가족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제는 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아이 러브 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웃는 표정이었다. 향년 73세. 이 씨의 유언에 따라 유족은 화환과 부조금을 받지 않았다.

○ 준비된 죽음이 가치관을 바꾸다

김 씨는 고별파티와 장례식에 모두 참석했다. “바르게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았습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큰 변화가 생겼어요.”

사실 김 씨도 당시 폐에 혹이 생겨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수술을 앞둬 걱정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이 씨의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오히려 죽음은 ‘당하는 게’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란 진리를 깨달았다. 김 씨가 ‘오늘도 행복하세요’라는 문구를 메일에 꼭 첨부하는 이유다.

이 씨처럼 죽음을 차분하게 맞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4.8%만이 ‘죽음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나머지는 생의 마지막에 대한 준비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복지부는 ‘세계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날’(13일)을 맞아 전국 41개 의료기관을 통해 ‘준비하는 죽음’에 대해 홍보활동을 벌이는 중이다. 암 환자를 대상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의미를 알려주고 사진전도 연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날#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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