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서총장 자진사퇴 확정적” vs 총장 측 “음해관련 진상규명 먼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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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남표 KAIST 총장 퇴진유예 합의… 해석 놓고 또 갈등

KAIST 이사회가 20일 처리하려던 서남표 총장 계약해지안을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오명 이사장과 서 총장이 회의에 앞서 서 총장 거취를 포함한 현안을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사들이 이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측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서 총장의 거취와 거취 표명 시기 등에 대한 해석이 엇갈려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 갑작스러운 합의모드 배경은

오 이사장은 이날 오전 8시 반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임시 이사회를 개최한 후 “서 총장이 모든 것을 이사장에게 위임하기로 했다. 앞으로 총장의 의견을 충분히 감안해 모든 문제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현재 학교 개혁 및 거취와 관련해 내 소신과 원칙에 이사장이 뜻을 같이해 줬다”고 말했다. 또 양측은 이사회 내에 KAIST 정상화 및 발전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소위원회를 둬 1, 2개월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이사회 개최 1시간을 앞둔 오전 6시 반 만나 1시간 반 동안 해결책을 논의했다. 당초 이사회 개회 시간은 오전 7시 반이었으나 두 사람의 긴급 회동에 따라 1시간 늦어졌다.

전날 밤늦게까지만 해도 서 총장은 계약해지보다 해임을 요구했고 오 이사장은 서 총장이 자진사퇴하지 않으면 계약해지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오 이사장은 서 총장 진퇴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한 마당에 계약해지가 일방적인 방법이라고 비판받을 것을 우려한 듯하다. 계약해지의 ‘합리적인 이유’를 대라는 서 총장에게 패소하면 일방 계약해지의 대가로 남은 연봉인 8억 원을 물어 줘야 하는 현실적 문제도 부담이었다.

서 총장은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진퇴를 결정하는 명예로운 퇴로를 모색해 왔다. 그동안 “특허 도용 사건 수사 결과가 나오면 스스로 거취를 밝히겠다”고 말한 배경이다. 박모 교수가 자신의 모바일하버 발명품 특허 명의를 서 총장이 도용했다고 주장한 이 사건은 경찰에서 박 교수의 조작으로 결론 났다.

정치권의 권고가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19일 자체 조찬 간담회에서 “계약해지 같은 처리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모아 이사회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교수협-학생 40여명 피켓 시위


하지만 20일 오후로 접어들면서 양측은 서로의 발표 내용 일부를 부인하면서 다시 갈등을 보였다. “서 총장이 모든 것을 오 이사장에게 위임했고, 이사장과 총장의 협상으로 거취를 결정한다”는 합의 내용을 놓고 이사회는 ‘자진사퇴는 확정적’이라고 해석했다. 경종민 교수협 회장은 “오 이사장이 이사회 후 ‘서 총장이 사퇴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일을 확실히 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곽재원 이사도 기자들과 만나 “서 총장이 명예롭게 퇴진하는 길을 열어 준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 총장 측은 “일부 이사들의 ‘서 총장 자진 사퇴’ 발언은 사견일 뿐이며 ‘학내 문제(교수협의 서 총장에 대한 의혹 제기) 해결이 전제되지 않은 자진 사퇴는 없다’는 서 총장의 기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서 총장의 사퇴 시기를 둘러싼 논란도 제기됐다. 서 총장 측은 ‘향후 후임 총장을 함께 선임하기로 한다’고 한 합의 문구를 토대로 특허 도용 사건의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 뒤 거취를 결정하고 그 후 총장 선임 작업을 이사회와 같이 벌인다는 생각이다. 총장 선임 작업 3, 4개월을 포함해 최소한 5개월은 걸린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교수협은 “서 총장이 자진사퇴를 조건으로 계약해지안 상정을 유예 받았으니 3개월 내에 그만둬야 한다”고 밝혔다. 교수협과 학생 40여 명은 이날 이사회장 앞에서 ‘서남표 총장은 독선과 아집을 멈추고 물러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사회 일부에서는 시기 논란을 떠나 서 총장의 사퇴가 교수협의 일방 승리로 인식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당장 다음 총장 선거에서 교수협이나 교수평의회가 역할 확대를 강조하고 나설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사회 관계자는 “KAIST 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이사들의 선임권을 교수평의회와 총동문회 이사회가 3분의 1씩 가져야 한다고 교수들이 이미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지배구조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며 “교수평의회와 총동문회는 동질성이 높아 KAIST를 이공계 선도 모델로 개혁하려는 정부와 이사회의 각종 시도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서남표사퇴#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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