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예인 모방자살’은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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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신상도 교수팀 ‘자살증가율 입증’ 논문 국제학술지 게재
■ 대형병원 응급실환자 분석

베르테르 효과(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해 일반인이 따라 하는 자살)를 통계적으로 입증한 국내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게재됐다.

신상도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연예인 자살이 모방 자살 시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논문이 국제학술지 ‘사회 정신의학 및 정신의학적 역학’ 온라인판에 지난해 하반기 게재됐으며 곧 오프라인으로 출간된다고 26일 밝혔다.

연구팀은 2005∼2008년 전국 주요 대형병원의 응급실 85곳에 온 환자 545만여 명 가운데 자살시도 환자 2만7605명을 분석했다. 이 기간에 자살한 연예인 5명(이은주, 유니, 정다빈, 안재환, 최진실)이 죽기 2주 전부터 4주 후까지의 자살시도 환자 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연예인 자살사건 1, 2주 후 자살시도가 실제로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다가 사건 이후 3, 4주가 지나면서 대체로 조금씩 줄었다.

예를 들어 2008년 10월 최진실이 숨지기 1주 전에는 자살시도 환자가 인구 1만 명당 63.6명이었다. 그러나 사건 1주 후에는 80.5명, 2주 후에는 82.7명으로 늘었다. 3주(73.7명)와 4주(66.3명)째로 접어들면서는 자살시도가 줄어들었다.

유니가 2007년 1월 자살했을 때에도 사건 1주 전에는 자살시도 환자가 1만 명당 46.8명이었지만 사건 1주 후 52.5명, 2주 후 61.0명으로 점점 증가했다. 자살시도는 3주(59.1명)와 4주(52명)째 들어 줄어들었다. 유명인이 자살하면 일반인이 뒤따른다는 속설이 이번 연구로 입증된 셈이다.

신 교수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을 찾은 환자의 통계를 이용해 베르테르 효과를 정확하게 입증한 것은 국내외적으로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나쁜 일이라도 동질감을 느끼고 싶은 대상이 하면 받아들이기 쉬운 심리가 있다. 유명인이 자살하면 일반인이 자살에 대해 갖고 있는 심리적인 문턱도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자살문제를 다룬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처음 게재되는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1위인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2010년 기준으로 국내 자살건수는 인구 10만 명당 31.2명이다. 10년 전인 2000년(13.6명)보다 배 넘게 늘어난 수치다.

한국의 자살률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증가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건수는 1997년 13.1명에서 1998년 18.4명으로 1년 만에 5.3명 늘었다. 특히 이 기간에 남성의 자살률은 18명에서 26.5명으로 훌쩍 뛰었다.

외환위기가 끝난 2000년도 이후에도 자살률은 꾸준히 증가했다. 2010년 기준으로 10∼30대 젊은층의 사망원인 1위 및 40∼50대 중년층의 사망원인 2위가 자살이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도 한국의 자살문제에 대해 이례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소의 정신건강 및 상해예방 팀장인 왕샹둥 박사는 이 문제를 연구하려고 26일 한국을 찾았다. 그는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터지고 난 후 자살률이 치솟는 현상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적인 자살 전문가가 한국을 연구하기 위해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자살을 남의 일로만 여겨 무관심한 경우가 많지만 한국은 2003년 이후 줄곧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자살 문제가 관심을 모으는 사안이 됐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모방자살#베르테르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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