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최고령 당첨자는?… ‘70세 청춘’ 10학번 권오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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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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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최고령 당첨자인 권오학 씨는 “공부를 하는 지금이 인생의 봄”이라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최고령 당첨자인 권오학 씨는 “공부를 하는 지금이 인생의 봄”이라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그저 배우고 싶은 욕구 때문에 대학교를 다니는 건 아니에요. 100세 시대 아닙니까. 남은 인생, 제 능력 발휘해 가며 살고 싶어요. 졸업 후엔 대학교에서 배운 것을 활용해 작은 사업을 할 겁니다.”

올해 일흔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열정적인 단어가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빛나는 눈빛은 20대 청년 못지않았다. 정부가 1월 선발한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의 최고령 당첨자인 권오학 씨 얘기다.

권 씨는 경기 안성시에 있는 한경대 원예과 3학년에 재학 중인 ‘10학번’ 대학생이다. 권 씨가 당첨 받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은 9000채 모집에 2만2031명이 신청해 평균 2.45 대 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인기가 높았다. 권 씨는 “돈이 없는 대학생이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해서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입학 후 처음 1년은 기숙사에서 20대 초반인 대학생 3명과 함께 지냈지만 젊은이들과 생활 패턴이 달라 부담이 됐다고 털어놨다. “초저녁에 잠들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같은 방 젊은 동기생들이 잠을 많이 설쳤어요.” 결국 그는 2학년 때 학교 근처의 월세로 이사했다. 권 씨는 “소득 없이 연금으로 생활하는 처지라 주거비 부담이 컸는데 이번에 LH의 덕을 보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권 씨는 1974년부터 2004년까지 바다를 누비며 3등 항해사와 2등 항해사, 1등 항해사를 거쳐 선장까지 지낸 뱃사람이다. 선장으로 일한 기간만 17년이다. 배를 타기 전엔 13년간 해군에서 부사관 생활을 했다. “1961년 해군에 들어가 함대 사령부에서 비밀 취급 업무를 했어요. 군함도 많이 탔죠. 군 생활까지 포함하면 바다에서만 40년 넘게 있었습니다.”

권 씨는 바다생활을 하면서 세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을 했다고 귀띔했다. “베트남전 참전 당시 해안에 병력과 탱크를 내려주고 철수하는 작전을 수행하던 중 밀림에 숨어 있던 베트콩들로부터 집중 사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운이 좋았어요.” 두 번째, 세 번째 위기는 선장으로 일하면서 인도네시아 인근 해역을 항해할 때 해적과 조우하면서 찾아왔다. “해적들에게 두 번이나 납치됐어요. 시퍼런 칼을 눈앞에 흔들며 돈을 요구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숨겨 뒀던 비상금을 건네고 목숨을 건졌지요.”

2004년 ‘바다 생활’을 접었지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바다에서 보낸 그에게 육지 생활은 쉽지 않았다. 1남 2녀의 자녀들은 서울대 연세대 등 명문대를 졸업하고 모두 출가했다.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아버지 노릇을 못한 터라 자녀에게 용돈을 받아쓰기도 미안했다.

권 씨는 “한동안 자괴감에 빠져 지냈다”며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젊게 살려면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종로의 평생교육기관인 ‘진형고’에서 고교 졸업장을 취득하고 2010년 한경대 원예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가겠다고 하니까 불가능한 일을 한다며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나이가 많다고 꿈을 갖지 않는 것은 더 ‘쪽팔리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권 씨는 지금도 방 한 칸짜리 원룸에서 쭈그리고 앉아 공부를 하다 보면 힘들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청춘을 다시 산다는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지금이 내 인생의 봄이고, 수확의 계절 가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또래의 남자들도 가을을 기다리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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