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내라, 해양주권”… 불법 中어선 단속 해경 1명 흉기 찔려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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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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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미지근한 정부, 강력 대응을”해적질 수준 ‘깡패조업’에 2008년 이어 두번째 희생… 외교부, 中대사 불러 항의

“어린 3남매 어찌하라고… ” 인천해양경찰 특공대원인 고 이청호 경장의 유족이 12일 오후 인하대병원 영안실에서 오열하고 있다. 이 경장은 이날 오전 인천 옹진군 소청도 남서쪽으로 85km 떨어진 해상에서 불법조업 중인 중국어선 나포 작전을 펼치다 중국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인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어린 3남매 어찌하라고… ” 인천해양경찰 특공대원인 고 이청호 경장의 유족이 12일 오후 인하대병원 영안실에서 오열하고 있다. 이 경장은 이날 오전 인천 옹진군 소청도 남서쪽으로 85km 떨어진 해상에서 불법조업 중인 중국어선 나포 작전을 펼치다 중국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인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2일 서해의 한국 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중국 어선의 ‘불법 도적(盜賊) 어로’를 단속하던 해양경찰관이 중국 선원이 휘두른 흉기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해적’이나 다름없는 중국 어선에 대해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 어선의 저항이 갈수록 흉포화하는데도 정부가 ‘외교 갈등’을 우려해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결국 이런 참극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단속 매뉴얼’대로 집행했다면, 어떤 결과를 빚더라도 외교 무대에서 당당히 대처하고 ‘과잉 대응 논란’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사망자와 유가족에 대한 사과나 재발 방지책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한국 측이 중국 어민에게 합법적인 권리를 보장해 주고 인도적 처우를 해주기 바란다”라고만 밝혔다. 특히 둥만위안(董漫遠) 중국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이날 홍콩의 펑황(鳳凰)위성TV에 출연해 “중국 어민뿐 아니라 한국 해경도 교육이 필요하다”며 “얌전하게 어선에 승선했다면 중국 어민이 해경을 살해하는 일까지 발생했을까”라고 책임을 한국 측에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순직한 이청호 경장
순직한 이청호 경장
○ 중국 선장 흉기에 찔려 사망

이날 오전 7시경 인천 옹진군 소청도에서 남서쪽으로 85km 떨어진 서해 EEZ를 넘어 불법 조업에 나선 66t급 중국 어선인 루원위(魯文漁)호 나포작전에 투입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3005함 특공대원 이청호 경장(40)이 선장 청다웨이(程大偉·42) 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헬기로 인하대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2008년 9월 중국 어선을 검문하다 선원들의 흉기에 머리를 맞고 바다에 빠져 숨진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박경조 경위에 이어 두 번째다.
▼ “내 집 안방서 흉기 휘두르는데… 정부는 왜 中 눈치만 보나” ▼

이낙훈 순경(33)도 흉기에 배를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해경은 나포한 중국 어선과 선원 9명을 인천해경으로 압송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살해 혐의로 조사 중이다. 청 선장은 해경 조사에서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박석환 외교통상부 1차관은 이날 낮 장신썬(張흠森) 주한 중국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중국 측에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청와대도 서해 불법 조업 중국 선원의 폭력 행위에 대해 종합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수협중앙회는 14일 ‘중국 어선 불법 싹쓸이 조업 규탄 대회’를 열기로 했다.

○ ‘해적이 따로 없다’…낫 갈고리 저항

인천해경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40분경 3005함은 레이더를 통해 서해 EEZ를 침범한 중국 어선 2척의 불법 조업을 포착했다. 3005함에 타고 있던 특공대원 16명은 진압장비를 착용한 뒤 고속단정 2척에 나눠 타고 루원위 호에 접근해 오전 6시 25분경 정선 명령을 내렸으나 선상에 있던 중국 선원들이 손도끼와 갈고리 낫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며 극렬하게 저항했다.

곧바로 특공대는 어선에 섬광탄을 터뜨린 뒤 6시 52분경 배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대원들은 갑판과 기관실 등에 있던 선원 8명을 차례로 제압했으나 조타실에 있던 청 선장은 문을 걸어 잠근 뒤 유리창을 깨며 저항했다. 오전 6시 59분경 이 경장은 섬광탄을 다시 조타실에 던지고 문을 부수고 들어갔으나 청 선장이 깨진 유리로 이 경장을 찌른 것으로 보고 있다. 해경은 청 선장에 대한 추가 조사를 통해 깨진 유리가 아니라 미리 준비한 흉기를 사용했는지를 가릴 방침이다. 또 이 경장이 방검(防劍) 기능을 갖춘 조끼를 입었지만 조끼 사이로 2∼5cm가량 벌어진 옆구리를 찔렸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개선하기로 했다.

부상 신고를 받은 인천해경은 헬기를 긴급 투입해 이 경장 등을 인하대병원으로 옮겼지만 이 경장은 장기 파열에 따른 과다 출혈로 오전 10시 10분경 숨졌다. 해경은 유족과 협의해 이 경장에 대한 영결식을 치른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해경은 이 경장에게 1계급 특진을 추서하기로 했다.

○ “중국대사관 앞 촛불시위라도 해야”

수년째 공해도 아닌 내 집 안방과도 같은 영해를 유린하며 해경의 정당한 법집행에 맞서 온갖 살상용 흉기를 휘둘러 온 중국 어선의 만행에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 누리꾼은 “매번 중국 선원들이 흉기 들고 설쳐도 문제없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저러는 것 아니냐”며 중국의 만행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럴 때 촛불시위도 하고 중국 대사관 앞에서 국기도 좀 태워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글도 있었다.

중국 어선의 단속 저항은 갈수록 흉포화하고 있다. 해경 단속에 저항하며 도끼와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는 것은 기본이다. 최근에는 중국 어선 20여 척이 선단을 이뤄 선체를 밧줄로 묶고 저항하는 것은 아주 흔한 수법이 됐을 정도다. 하지만 해경은 총기 사용을 자제해왔다. 자칫 단속 과정에서 총기를 발사해 중국 선원이 크게 다치거나 숨질 경우 외교문제로 비화될 것을 우려해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해경 고위 관계자는 “매뉴얼에 따르면 중국 선원이 흉기를 휘둘러 단속 경찰관이 신변에 위협을 느낄 때 대퇴부를 향해 총기를 사용할 수 있다”며 “그동안 높은 파도에서 배가 요동치면 겨냥이 흔들려 중국 선원들이 중상을 입거나 숨질 수도 있어 총기 사용을 자제했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 근본적 대책 마련해야


정부는 올 6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계속되자 중국 농업부와 ‘한중 어업공동위원회 실무회의’를 열어 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근절하기 위한 ‘3대 엄중 행위’를 규정했다. △무허가 조업 △영해 침범 조업 △폭력을 사용해 공무를 방해한 어업 등으로 이를 위반한 어선은 상대국 EEZ에서의 입어 자격을 최대 3년간 취소하기로 했다. 또 이달 초 불법 조업 중국 어선에 물리는 담보금(법원이 판결을 내리기 전에 선박이나 압수물을 돌려받기 위해 내는 예치금 성격의 돈)을 최고 1억 원으로 올렸다. 정부가 강력히 단속해도 담보금이 낮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였지만 불법 조업은 줄어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단속 인력과 장비를 확충하는 것과 함께 불법 조업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더욱 강력하고 구체적인 외교 및 법률적 조치를 중국 정부와 협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석용 한남대 법대 교수는 “좀 더 적극적으로 불법 조업을 규제하는 법률을 만들고,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도 이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베이징=고기정특파원 koh@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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