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영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 인터뷰 “개인 신념과 판결 구분할 거라 믿기에 판사직 맡긴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동양계 여성 최초로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에 임용된 석지영 교수가 3일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동양계 여성 최초로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에 임용된 석지영 교수가 3일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지난해 11월 동양계 여성 최초로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에 임용된 석지영(미국명 지니 석·38·사진) 교수가 하버드대 로스쿨 한국동문회 초청으로 지난달 30일 한국을 찾았다. 10년 만의 귀국이었다. 그는 법무부(5일)와 대법원(6일) 방문, 이화여대(5일) 및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7일) 특별강연을 마친 뒤 7일 한국을 떠난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3일 석 교수가 묵고 있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과 관련해 최근 사법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거센 논란 등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소신을 밝혔다.

―최근 한 판사가 한미 FTA 연구를 위한 사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 설치를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원칙적으로 그 TF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연구 목적의 기구라고 생각한다. 판사가 법적 규범을 지키며 특정 주제를 연구 분석하기 위한 기구라면 그 자체로는 논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판사의 법적인 (효력을 갖는) 행위는 특정한 소송이 제기돼 자신에게 그 사건이 맡겨진 뒤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건이든 실제로 법적 문제가 벌어진 뒤에야 판사들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본다.”

―또 다른 판사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와 관련해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 판사가 관련 사건을 맡는 것이 적절하겠냐는 논란도 불거졌다.

“판사들도 하나의 개인이다. 판사라고 해서 판결하는 사람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판사에게도 가족이 있고, 성장 배경이 있고 나름의 관심사가 있다. 판사가 자신의 신념과 개인적 가치관을 판결 및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판사들이 두 사안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들에게 ‘판사’의 지위를 맡긴 것이다. 판사가 그 책임과 약속을 받아들였다면 윤리 규범을 위반하기 전까지는 판사들을 믿어야 한다.”

―판사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에 대해 대법원은 “신중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판사가 정치적 쟁점에 대해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표현해선 안 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판사 자신이 특정 사건에 연루돼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미리 금기를 정해서는 안 된다. 판사도 특정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판사도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다. 그래서 판사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 판사가 FTA에 대해 의견을 갖는 것이 왜 문제인가. 다만 판사가 FTA 관련 사건을 맡을 경우 객관적 판단을 약속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예일대에서 영문학과 불문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대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문적 배경으로 법학 교수가 됐다. 문학 연구 경험은 법학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나는 언어에 대해 열정과 관심이 매우 많다. 그것은 판례나 법조문을 이해하고 해독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변호사에게도 단어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법적으로는 언어가 어떤 사람을 감옥에 보낼 수도 있고 벌금을 내게 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패션디자인의 저작권을 주장해 세계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패션디자인의 저작권은 미국 유럽 등 패션 선진국이 후진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거라는 의견도 있다.

“음악 영화 책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저작권이 패션디자인에도 적용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패션은 계절을 타기도 하고 빠르게 바뀌기도 한다. 트렌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패션의 경우 모방(copying)하거나 다른 사람을 보고 따라하는 ‘컬렉티브 무브먼트(collective movement)’라는 개념도 중요하다. 모든 법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고 누군가는 이익을 얻고 누군가는 불이익을 받기 마련이다. 중국 미국 등에 복제산업이 있다. 창조적으로 디자인을 하고 디자인에 돈을 쏟아 붓는 국가가 있기 때문에 복제는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복제품 판매를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법으로 복제하지 못하게 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오리지널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투자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부모들이 석 교수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매우 궁금해 한다.

“제 부모님은 엄하셨고 자식들 교육이 최우선이었다. 특별한 것은 자식들의 자유를 최대한 인정했고 억누르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식들이 관심을 갖고 행복해하고 열정을 펼칠 수 있는 분야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내 형제 모두 자기주장이 매우 강하고 의견이 분명했지만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특히 책 읽을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셨다. 학교가 끝나면 어머니께서 차로 데리러 오셔서 도서관에 데려줬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