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상고 안 해 패소했다면 “의뢰인에게 배상”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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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판결 달라 따져볼 만”… 대법 판례선 피해인정 안해
최근엔 의뢰인 주장 수용 늘어

상고심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제때 상고이유서를 내지 않아 대법원에서 재판을 받아볼 기회를 상실했다면 의뢰인에게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박대준)는 소송의뢰인 나모 씨(51·여)가 상고심 소송 대리를 맡은 이모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이 변호사는 나 씨에게 2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소송 수행 사무를 위임받은 변호사는 의뢰인이 재판을 받을 권리를 충실히 보장해줘야 하는 업무의 중대성과 전문성으로 인해 더욱 가중된 주의 의무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또 “1심에서 승소했던 나 씨가 항소심에서 지는 바람에 상고심 재판을 받아볼 필요가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해 배상액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법원은 변호사의 실수로 소송에서 진 의뢰인이 해당 변호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이겼으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을 직접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내도 인정하지 않았다. ‘상급심에서 확실히 이겼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 적극적 재산상 손해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1993년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호사의 실수로 피해를 본 당사자들이 재산상 손해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해’까지 주장하면서 일부 받아들여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변호사가 늘고 있지만 실력 수준에 따라 의뢰인에게 충분한 법률적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이 같은 소송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법원 관계자는 “변호사의 과실로 인해 의뢰인이 입은 정신적 피해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하급심을 구속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는 것은 과실로 의뢰인에게 정신적 피해를 끼쳐 이에 대한 배상 소송 1, 2심에서 지고도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아예 상고하지 않는 변호사가 상당수에 이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2002년 7월 나 씨는 9억 원대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가 다툼이 생겨 소송을 시작했다. 1심에서 승소했지만 항소심에서 패소해 이 변호사에게 상고심을 맡겼다. 하지만 상고이유서 미제출로 패소가 확정되자 이 변호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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