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로봇다리 수영선수’ 14세 세진이와 ‘戰士’ 엄마

동아일보 입력 2011-11-07 03:00수정 2011-11-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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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음에 장애가 없어야… 그걸 돕는 재활병원은 없나요”
“의족을 벗어 던져도 자유로운 물속이 좋아요.” 김세진 군(오른쪽)이 3일 수영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서영수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다. 화성=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물살을 가르는 모습이 거침없었다. 두 팔만 보였지만. 수영선수 김세진 군(14)은 태어날 때부터 무릎 아래가 없었다. 오른손 손가락은 두 개뿐이다.

그런 세진이를 양정숙 씨(43·경기 화성시)가 1999년 입양했다. 보육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생후 18개월이던 세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내 아이구나”라는 운명을 느꼈다. 모자로 맺어진 12년은 세진이의 재활을 위해 고스란히 바친 세월이었다.

양 씨는 3일 경기 화성시 유앤아이스포츠센터에서 기자를 만났을 때 스스로를 ‘전사’(戰士)라 불렀다. “한국에서 장애아를 키우려면 엄마는 독해질 수밖에 없어요.”

○ 매일 두 시간 반씩 대전∼서울 왕복


오전 6시. 눈도 뜨지 못하는 네 살배기 세진이를 차에 앉혔다. 두 시간 반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했다. 9시 진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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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과 서울을 매일같이 오갔다. 30분의 물리치료를 위해, 두 달간. 그나마 반년을 기다린 결과였다. 걸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틸 수 있었다.

전국 방방곡곡, 재활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돈 많으면 한 번 걷게 해보라’며 절망적인 이야기만 들었다. 진료실 밖에서 기다리던 휠체어업자가 따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양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병원을 나와 신발을 한 켤레 사며 다짐했다. 반드시 세진이를 걷게 하리라.

마지막으로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신지철 세브란스재활병원장은 “한 번 해보자”고 말했다. 울음을 터뜨리는 양 씨에게 “재활치료는 환자가 아니라 보호자가 못 견딘다. 마음을 굳게 먹어라”고 말했다. “오늘 안 된다고 내일도 안 되는 건 아니다. 매일 거울 앞에서 세진이와 하루 치료 과정을 되돌아보며 주문을 외웠어요.”

매일 차를 타면서 모자는 탈진 직전까지 갔다. 양 씨는 세진이의 재활치료를 직접 돕기로 결심했다. 고무공에 다리를 올리고 팔로 균형 잡는 모습 등 재활치료 과정을 하나하나 스케치북에 그리거나 사진을 찍었다. 체조선수였던 양 씨는 다행히 동작을 익히기가 남보다 수월했다. 해부학 원서를 구해 근육과 뼈 모양을 공부했다. 병원 왕복 횟수가 일주일에 세 번, 두 번, 한 번으로 줄었다.

○ 유아용 의족 없어 사기도 당해

김세진 군이 어머니 양정숙 씨와 3일 경기 화성시 유앤아이스포츠센터 앞을 걷고 있다. 모자가 이처럼 환하게 웃기까지는 눈물겨운 재활 과정이 있었다.
팔과 허리의 근력을 키운 뒤 수술을 받았다. 의족을 달기 위해 살과 뼈를 매끄럽게 깎았다. 수술 이후 엄마의 희망대로 세진이는 걸었다. 나중에는 뛰었다. 여덟 살 때 5km 마라톤을 완주했고, 아홉 살 때 로키산맥 3870m 고지를 밟았다.

세진이가 ‘로봇다리’ 수영선수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독일산 티타늄 제품을 착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처럼 딱 맞는 의족을 구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10년 전만 해도 유아용 의족이 없었어요. 맞춤의족을 만들어 준다는 업자에게 800만 원을 건넸어요. 전셋집을 옮겨 가며 마련한 돈인데 세진이가 못 걷는 거예요.”

억지로 걷게 하고 혼도 내 봤다. 이상했다. 한 달이 지나도 중심을 잡지 못했다. 의족 덮개를 뜯어봤더니 녹슨 중고품을 다시 조립해 만든 제품이었다. 찢어진 의족을 들고 업자를 찾아갔다. 의족을 다시 받았지만 세진이 다리만 퉁퉁 부을 뿐이었다. 양 씨는 지금도 “일찍 재활치료를 받고 의족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면 저도, 세진이도 덜 힘들었을 것”이라며 가슴을 친다.

세진이가 말문이 트일 무렵 처음 배운 말이 ‘미워’ ‘싫어’ ‘안 해’였다. 양 씨가 걸음마를 가르치려고 호되게 연습을 시켰기 때문. 걷기 시작한 순간을 잊지 못할 정도다. 세진이는 “네 살 때 기억이 거의 없는데 처음 걸음마를 뗀 날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 장애인 수영선수로 새 삶 찾아


“엄마, 왜 난 장애인으로 태어났어요?”

“왜, 슬프니?”

“슬픈 건 아닌데 불편해요.”

불편함을 극복한 세진이는 장애인 수영계의 ‘박태환’으로 불린다. 2006년 일본 장애인 수영대회 번외경기에 나가 6등을 하면서였다. 2007년 독일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는 2위에 올랐다. 다음은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 접영 50m, 자유형 150m, 개인혼영 200m에서 금메달로 3관왕에 올랐다. 세진이는 내년 런던 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수영은 원래 재활치료의 하나로 생각했다. 안전하면서도 선수 생명이 길 것 같고, 다리를 숨기지 않고 옷을 벗는 게 자신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듯했다. 세진이는 어릴 적부터 물을 몹시 무서워했다. 양 씨는 벌벌 떠는 세진이를 물속에 집어던졌다. 살기 위해 엄마 손을 잡으면 발차기를 시켰다. 차츰 소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모라 저렇게 모질게 한다고 동네 아줌마들이 수군댔다.

“세진이 답이 걸작이에요. ‘우리 엄마 계모예요, 모르셨어요?’라고 했대요.”

혹독하게 수영을 시킨 이유는 ‘절대 집에 가두고 혼자만 살도록 하지는 않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처음 입양했을 때 세진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어요. 그때 이 아이가 무엇을 못할 것이라 생각하느냐고 친정아버지가 되물으시더라고요.”

양 씨는 그 말을 듣고 스케치북을 사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적었다. 말을 하니까 선생님도 할 수 있고, 손을 쓰니까 청소부도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적는 스케치북이 금방 가득 찼다.

엄마의 마음을 아이가 이해했을까. 세진이는 ‘엄마는 나무, 나는 새. 엄마 때문에 하늘을 봐서 좋아요’라는 시를 썼다. 세진이는 엄마를 딛고 세상 밖으로 훨훨 날아올랐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양 씨의 전화가 수시로 울렸다. 병원에서 만난 엄마들과 하루 몇 통씩 통화를 한다. 사고로 다리를 잃거나 팔을 잃은 아이를 둔 엄마들은 세진이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받는다. 양 씨는 앞으로 생길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이 심리적 치료도 맡아줄 것을 당부했다.

“엄마들 자조모임을 만들고, 부모 교육도 시켜주세요. 엄마의 마음이 병들지 않아야 아이도 건강해집니다.”
▼ “美, 입원하자마자 ‘퇴원이후’ 교육… 한국선 병원 나가면 죽는 줄 알아” ▼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49·사진). 2006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지질조사를 하던 중 비포장도로에서 전복 사고를 당했다.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됐지만 6개월 만에 전동휠체어를 타고 서울대 강단에 다시 섰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랜초로스아미고스 국립재활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달 26일 만난 이 교수는 “장애인의 사회 복귀를 돕는 것이 진정한 재활”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재활치료를 받았다. 한국과 어떻게 달랐는가.

“사고 이후 (단기간에) 보조공학기기를 써서 사회로 곧바로 돌아와 일을 했다. 복귀가 빨랐던 것은 사실 비싼 병원비 때문이다. 중환자실 비용이 하루 2500만 원이었다. 병원에 오래 있을 수 없다. 랜초 국립재활병원의 재활치료 프로그램은 3주 코스다. 아무리 장애가 심각해도 3주다. 이곳에서는 입원 직후부터 퇴원 준비를 시킨다. 가족을 불러놓고 ‘퇴원 이후’를 교육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체계가 잘돼 있다. 과장해서 말하면, 장애인이면 평생을 병원에서 보내도 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은 병원 밖에 나가면 죽는 줄 안다.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재활치료란 무엇인가.

“환자에게는 인권이 보류된다. 의사들이 고통스러운 치료과정을 환자에게 진행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장애인에게는 인권이 있다. 병원은 환자가 평생 병원에 있지 않고 장애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 병원에서도 교육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작업치료는 손동작 치료가 아니라 명확한 직업재활을 목표로 한 과정이어야 한다.”

―장애인의 사회복귀를 강조하는 이유는….

“장애인 문제는 의료적 또는 사회적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사회적 차원은 교육과 직업재활을 통한 사회 재참여 프로세스를 말한다. 한국은 의료적 차원은 그런대로 있지만, 사회적 차원의 배려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예전에 나 같은 척수손상 환자는 2차 감염 등으로 3개월 안에 죽었다. 얼마 살지 않으니 교육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교육의 필요성이 커졌다.”

―장애인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장애인을 위한 전문적인 이공계 교육프로그램(지식경제부의 ‘국민편익증진기술개발사업’)을 설치하려고 보니 서울대에 진학하는 장애인 학생의 80%가 인문사회계열이다. 장애인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이공계 교육에도 있었던 것이다. 열쇠는 장애아를 둔 어머니가 쥐고 있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아이가 장애를 얻으면 ‘끝’이라는 생각에 공부까지 신경 쓰지 못한다. 가끔 장애아 부모를 만날 때면 이렇게 말씀드린다. 이왕 고생하시는 거 아이 교육에 더 신경을 써달라고. 장애인에 대한 교육은 병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병원학교라는 것도 생기지 않나. 병원에서부터 환자와 가족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또 과학고 같은 데서도 장애인의 이공계 진출을 돕는 교육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리=임장혁 푸르메재단 간사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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