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신생 시골학교가 ‘오고 싶은 학교’ 됐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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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양오초등학교, 신문 읽고 토론 수업 4년째
구독률 100%… 기사 읽으며 하루 시작, 학생수 계속 늘어… 6개 학급 더 늘려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의 양오초등학교는 이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6년 전 개교한 신생 학교다. 시내 중심지에서 7∼8km 떨어진 곳으로 아파트 단지가 몇 개 있지만 여전히 야트막한 산과 들로 둘러싸여 농촌에 가깝다.

26일 찾은 양오초교에서는 교실을 늘리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저출산으로 학생이 줄어드는 게 보통인데 시골 학교가 교실을 증축하는 모습이 이상해 이유를 물었다. 유현의 교장은 “우리 학교 담당 구역이 아닌 곳의 학부모들도 자녀를 양오초교에 보내고 싶다고 계속 민원을 제기해서 결국 구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개교하면서 36개 학급이던 양오초교는 학생이 계속 늘어 6개 학급을 더 늘려야 했다. 일부 명문 학교에나 있는 ‘위장전입’ 시도 사례도 있다고 한다. 교사들은 양오초교를 ‘오고 싶은 학교’로 만든 비결은 신문활용교육(NIE)이라고 입을 모았다.

1. 신문을 통합교과 수업 교재로

3교시 수업이 시작되자 6학년 1반 담임인 현원재 교사는 9월 15일자 동아일보를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서울 지하철의 심야 연장 운행을 두고 찬반 논쟁이 벌어진다는 기사였다. 현 교사는 “오늘은 신문 기사를 읽고 토론을 해볼 겁니다. 국어 수업이기도 하고, 사회 수업이기도 해요”라며 자신의 경험부터 얘기했다.

“선생님은 추석 때 부산에 내려갔다가 기차를 타고 밤늦게 서울에 도착했는데 지하철이 심야 운행을 해서 다행히 집까지 갈 수 있었어요. 근데 이 기사를 보면 심야 운행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고 해요. 왜 그런지 기사를 각자 읽어봅시다.”

학생들이 기사를 다 읽자 현 교사는 지하철 심야 운행에 대한 찬반 주장을 발표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5, 6명씩 그룹을 만들어 토론을 시작했다.

“승객도 별로 없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하니까 그만두는 게 좋겠어.”

“그럼 밤늦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 택시비를 줄 수도 없잖아. 또 여자들이 밤늦게 택시를 타면 위험할 수 있어.”

“심야 버스를 늘려서 버스를 타면 되잖아.”

“버스 늘리는 것도 돈이 많이 드는 건 지하철이나 마찬가지야.”

학생들은 10여 분간 이야기를 나눈 뒤 “심야 지하철을 전부 운영하지 말고 몇 칸만 떼어서 운영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대안을 냈다.

현 교사는 “여러분이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는 없지만 자기 의견을 편지로 쓰거나 홈페이지에 올리는 방법으로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다. 다음 시간까지 자기 의견을 써오라”고 말했다.

2. 신문 읽기가 친숙한 아이들

양오초교 학생들은 등교하자마자 책상 위의 신문을 보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모든 학생이 어린이신문을 구독한다. 현 교사는 “NIE를 열심히 하는 다른 학교에서도 우리 학교의 신문 구독률이 100%라는 말을 들으면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신문과 친숙하다는 흔적은 교실 여기저기에 보였다. 교실 벽면에는 학생들이 오려놓은 기사가 잔뜩 붙어 있었다.

한 학생은 미국의 과학 매체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동물’ 순위를 발표했다는 기사를 오려놓았다. 빈자리에는 1위를 차지한 해달, 4위인 페넥여우, 9위인 주머니쥐 더나트 등 생소한 동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인터넷에서 찾아 써놓았다. 다른 학생은 일본에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비에 섞여 내릴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 ‘방사능비’가 내리는 과정을 그림으로 알기 쉽게 그렸다.

“저학년 학생들은 NIE를 하기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현 교사는 어린 학생들이 NIE 시간에 만든 결과물들을 보여줬다. 신문에 나온 사진을 오려 자신의 그림에 붙이거나, 글을 쓰는 대신 신문의 글자를 모아서 일기를 완성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었다.

3. 교사들이 직접 NIE 교재 펴내

양오초교는 올해 4월 ‘생각팡팡 창의쑥쑥’이라는 NIE 교재를 펴냈다. 모든 교사가 1년 넘게 머리를 맞대고 완성한 결과물이었다. 교사들은 학생 수준에 맞춰 학년별로 다른 교재를 만들어 전교생에게 배포했다.

이민경 교사는 “교사들이 늦게까지 남아서 교재를 개발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재는 교육과정과 연계를 고려해 만들었으므로 수업시간에 활용할 수 있다. 학습활동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서 학생이 혼자 이용하기도 쉽다.

예를 들어 야구감독 김경문 씨에 대한 기사와 함께 김 감독이 한국 야구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과정을 정리해서 쓰는 식이다. 마음에 드는 기사를 찾아 등장인물의 경험을 정리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 신문을 보면서 재미있는 기사를 오려 교재에 붙인다.

한 학부모는 “아침 짧은 시간에 뭘 하겠느냐, 어차피 논술은 시간을 들여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했는데 꾸준히 신문을 읽으면서 아이가 서론 본론 결론을 나눠 쓰는 모습에 놀랐다”며 “다른 학교에서도 이런 방법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유현의 교장 “창의력 기르는데 NIE가 최고죠” ▼
부임하자마자 시작

유현의 교장
유현의 교장
유현의 교장(사진)은 2008년 양오초교에 부임하자마자 NIE 교육을 시작했다. 학생들의 창의력을 기르는 데 NIE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다들 창의성 교육을 강조하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자기 생각을 풀어쓰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이거든요. 신문은 가장 좋은 참고자료가 됩니다. 가장 정제된 글일 뿐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가 ‘팩트(사실)’이기 때문이죠.”

그는 전교생이 신문을 구독하도록 했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신문을 좋아했던 건 아닙니다. 화면에는 익숙하지만 활자는 싫어하거든요.” 그러나 점차 많은 학생이 매일 꼼꼼히 신문을 읽었다. 교사들도 신문을 이용한 수업을 시험해 보기 시작했다.

양오초교는 2009년에 경기도교육청이 지정한 교실수업개선 연구학교가 됐다. 그때부터 유 교장은 NIE 교재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책을 완성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인쇄비 600만 원이 전부. 교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지도 못했다. 교재가 완성된 4월, 때맞춰 문화체육관광부는 NIE 활성화를 위해 385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병국 당시 문화부 장관이 교재를 자체 개발한 학교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저를 초청했어요. 어떻게 이런 교재를 만드는 데 600만 원밖에 들지 않았느냐며 놀라더군요.”

이 교재가 NIE에 관심 있는 다른 학교의 교사와 학부모에게 알려지면서 보내 달라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유 교장은 “학교에서 NIE 자료를 만들 때 저작권 부담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덧붙였다.

남양주=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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