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시 장년창업센터 250명 ‘나만의 특기 살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딸 고생시킨 아토피 내가 잡는다”

“인생 이모작요? ‘인생 1막’도 아직 마무리 못 했는데요.”

20년 넘게 한 방송사 아나운서로 활동했던 임병용 씨(59). 정년퇴직을 6년 앞둔 2001년 그는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만 하다 보니 매너리즘이 생겼다”며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모 기업 홍보부장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제2의 도전’이라며 각오를 다진 그에게 떨어진 일은 단순한 결재 업무였다. 갈수록 ‘이런 일을 하려고 회사를 그만뒀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밀려왔다. 결국 그는 2년 만에 다시 회사를 나왔다.

○ 적성 살리는 창업 아이템 찾기

계획 없이 도전하겠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결론은 ‘말하기’였다. 그는 은퇴자 주례 교육부터 직장인 프레젠테이션 방법, 대학생 토론 교육 등 상황과 계층에 맞는 온라인 ‘맞춤형’ 화술 강의를 사업 아이템으로 정하고 지난달 강남구 삼성동 ‘장년창업센터’에 입주했다.

장년창업센터는 창업에 뜻이 있는 40대 이상 중장년층을 위해 서울시가 지난달 처음으로 마련한 공간이다. 지금까지는 20, 30대 청년 사업가들을 위한 공간만 강남과 강북 각각 한 곳씩 운영해 왔다. 옛 서울의료원 후관동을 리모델링해 만든 이 사무실에는 250명의 ‘예비 사장님’이 입주해 있다. 사업에 실패했거나 명예퇴직해 어쩔 수 없이 창업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은 아니었다. 이들은 “늙으면 비생산적인 사람으로 취급받는 사회 구조를 깨고 싶다”고 했다.

이곳에서 새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적성과 관심을 살린 아이템을 찾는 데 주력했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서 항생제를 연구하던 박태호 씨(60)도 마찬가지였다. 10년 전 대학입시를 준비 중인 딸이 아토피 피부염을 심하게 앓아 그해 대학 입학을 못하고 재수를 해야 했다. 주변에도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박 씨는 식물을 이용한 아토피 피부염 개선 기능성 식품 개발을 창업 아이템으로 정했다.

○ 창업 연령대도 점차 빨라져

최고령 입주자인 김인술 씨(76)의 사업 주제는 ‘어린이 한자 공부’다. 그는 현업에서 퇴직 후 8년 동안 동네 복지관에서 아이들 한자를 가르쳐 왔다. 아이들에게 흥미를 주기 위해 심리 테스트를 결합한 새로운 한자 교육법을 개발했고 비닐을 덧대 한자를 여러 번 썼다 지울 수 있는 특수 교재도 만들었다. 동네에 ‘재미난 훈장님’으로 소문이 나면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온라인 한자 교육 사이트를 준비 중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나이는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센터 입주자 250명 중 절반 이상인 127명이 40대로 50대(74명)와 60대(45명)보다 훨씬 많았다. 40대 입주자들 대부분은 30대 후반부터 자기 사업에 뜻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추세는 ‘귀농 교육’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시 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올해 농사 창업 과정인 ‘창업형’ 1, 2기 수강생 49명 중 40대가 29%(14명)로 47%를 차지한 50대(23명) 다음으로 많았다.

창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센터 관계자는 “50, 60대 입주자들이 현직에서 은퇴 후 창업에 도전한다면 40대들은 창업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맛집’을 소개하는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 개발을 준비 중인 장동윤 씨(40)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센터에 입주했다. 그는 “네 살, 다섯 살배기 딸을 키우는 데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