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직선제 폐지 바람]“파벌-비방-포퓰리즘… 총장 선거판에 상아탑 멍든다” 자성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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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선제 실태 어떻기에

22일 치러진 광주 조선대 총장선거는 불법 선거운동과 비방으로 가득한 ‘최악의 선거’였다.

조선대는 선거를 치르기 이틀 전 간접선거인단의 예비선거로 총장후보 8명을 3명으로 압축한 뒤 22일 교수 직원 등 1006명이 투표하는 본선거를 치렀다. 서재홍 교수(62·의학과)가 398표를 얻어 1위를, 전호종 교수(57·의학과)가 318표를 획득해 차점자가 됐다. 조선대 법인이사회는 26일 두 후보 가운데 총장을 결정할 예정이다.

선거 과정은 혼탁의 연속이었다. 총장선거 때마다 제기됐던 향응 제공, 보직교수직 사전 배분 의혹이 어김없이 지적됐다. 전 총장들의 선거 개입 의혹이 일었고 예비선거에 탈락한 총장후보 5명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서 선거는 과열됐다.

부산대 총장 후보였던 정윤식 교수는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임명제청을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대학은 6월 총장선거가 치러지기 2년 전부터 총장 출마 예상자들이 유·무형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다. 1위를 한 정 교수는 2009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교수 100여 명을 만나 선거운동을 했고, 올해 5월에는 경남 양산시의 한 연수원에서 선거인 37명을 모아 놓고 지지를 부탁한 혐의로 4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현행 교육공무원법에는 공직선거법과는 달리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총장선거에서는 후보자가 불·탈법 행위를 해서 적발되더라도 법적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선거에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1988년부터 대학 총장선거에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선거 때마다 대학가는 몸살을 앓아 왔다. 후보마다 선거캠프를 차려 비방과 폭로, 불법 선거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임금 인상과 복지 향상을 앞세운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는 등 정치판을 방불케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23일 교과부에 따르면 대학 총장 직선제는 민주화 바람을 타고 1998년부터 도입됐다. 성균관대 이화여대 연세대 등 일부 사립대는 한때 직선제를 시행했으나 각종 폐해가 반복되자 직선제를 포기하고 재단에서 임명하는 방식으로 회귀했다. 다만 국립대는 1991년 교육공무원법에 ‘대학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문구가 명시됨에 따라 지금까지 직선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전국 43개 국립대 중 KAIST, 울산과학기술대(UNIST), 한국철도대를 제외한 40곳에서 직선제를 시행 중이다.

직선제의 장점은 대학의 자율성이 확대되고 교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종 불법 선거운동으로 인한 학내 분위기 훼손, 교수들의 파벌 조성 등 후유증이 심각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의 분열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인맥 학맥 등에 따른 파벌 형성은 물론이고 당선 후 ‘자기 사람 심기’ 등의 인사 부조리가 나타난다. 표를 많이 얻기 위해 급여 인상 등 ‘선심성 공약’을 내세우고 이는 등록금(기성회비) 인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국립대 총장들이 후보 시절 내세웠던 공약사항을 보면 △교직원 연봉 상위 10% 보장 △교직원 복지를 위한 복지기금 확보 및 상여금 증대 △연구보조비 직무개발비 확대 등 임금과 복지 확대가 주를 이룬다. 이를 실현하려면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대학사회에서는 총장 직선제 폐지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국교원대 김명수 교수는 최근 대학구조개혁위원회가 개최한 오픈포럼에서 “현행 교수 중심의 총장 직선제는 대학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배제하고 대학을 선거판으로 변질시키고 있다”며 “선진국 명문 대학이 간선제를 택하고 있는 것에 비춰 우리도 간선제 또는 절충제 형태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과부 역시 총장 직선제가 국립대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보고 대학에 폐지 압박을 가하고 있다. 23일 구조개혁 중점추진 국립대 명단을 발표할 때도 전날 직선제 폐지를 선언한 대구교대를 명단에서 제외하는 ‘특혜’를 주기도 했다. 이날 선정된 대학 5곳에는 우선적으로 직선제 폐지를 요구할 방침이며 다음 달 확정 발표할 ‘2단계 국립대 선진화 방안’에도 총장 선출방식 개선안을 담을 예정이다.

이경희 기자 sorimoa@donga.com  
보성=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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