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 틈타 서민 노리는 전세사기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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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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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닮은 대역까지… “중개업자도 속을 판”

30대 회사원 K 씨는 6월 초 인터넷 부동산직거래 카페에 방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리고 얼마 뒤 한 남성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주인 아들이라는 배모 씨(27)는 서울 용산구의 새로 지은 원룸을 보여주며 “원래는 월세 60만 원짜리인데 보증금 35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으로 내 주겠다”고 K 씨에게 제안했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전세를 구하던 K 씨는 보증금 3500만 원에 월세를 40만 원이나 깎을 수 있다는 말에 끌려 곧바로 계약을 체결했다. 일반적으로 월세 10만 원을 깎아줄 때마다 보증금은 1000만 원꼴로 늘지만 요즘은 전세가 귀해 보증금 1000만 원 올리는 것으로는 월세 10만 원 깎기도 어려운 편이다. K 씨는 배 씨가 계약 과정에서 어머니라고 부르는 중년 여성과 함께 나타났고 집문서, 계약 관련 서류 및 주민등록증의 명의가 모두 이 여성의 이름으로 돼 있어 전혀 의심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2주 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나 “내가 집주인인데 누구냐”고 물으면서 K 씨는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배 씨가 실제 집주인에게 월세로 방을 빌린 뒤 집주인 명의의 신분증과 각종 서류를 위조해 K 씨에게 다시 전세로 방을 세놓고 돈을 받아 달아난 것이다.

최근 전세대란을 틈타 서민을 노리는 전세사기 사건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세로 나오는 부동산 매물이 적다보니 방 구하기가 어려운 서민들이 조건이 괜찮다 싶으면 곧바로 계약하는 경향을 노린 것. 주로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인터넷, 생활정보지 등을 통해 직거래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K 씨의 돈을 가로챈 배 씨는 결국 이달 초 경찰에 검거돼 구속됐다. 배 씨는 서울 강남구와 용산구 등에서 이 같은 수법으로 모두 4억8000만 원의 돈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말에는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전세사기 조직이 검거되기도 했다. 이들은 실제 집주인과 월세계약을 맺은 뒤 집주인 행세를 하며 피해자들에게 전세자금 대출을 받도록 해 이 돈을 가로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1월에는 충남 천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위조가 쉬운 주민등록발급신청서를 위조해 집주인 행세를 하고 허위로 집을 전세로 내준 뒤 돈을 가로챈 부부 전세사기단이 검거되기도 했다.

부동산직거래 인터넷 카페에는 이 같은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P 인터넷 카페 운영자는 최근 ‘세입자 구함’이라고 A 씨가 올린 글을 강제로 삭제했다. 카페 측은 “한 회원이 A 씨가 올린 글을 보고 방을 구하러 갔다가 인근 부동산을 통해 해당 집에서 매물이 나온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이 사실을 운영진에게 알렸다”며 “A 씨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계속 연락을 취했지만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아 글을 삭제했다”고 말했다. 이 카페 운영자는 “신고 글 외에도 쪽지나 메일로 전세 사기인지 확인해 달라는 문의가 자주 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요즘은 신분증, 서류 위조가 정교해져 부동산 중개업자도 (사기꾼이) 마음먹고 달려들면 속아 넘어가기 쉽다”며 “다만 중개업자를 통했는데도 사기를 당했을 경우 전세금의 일부라도 공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직거래보다는 안전한 편”이라고 말했다.

하재윤 부동산써브 상담위원은 “집주인의 허락 없이 전세 또는 월세로 계약한 방이나 집을 재임대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직거래할 경우 집 소유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기범의 집중 표적이 될 수 있다”며 “주변 시세보다 가격이 상당히 저렴하면 일단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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