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큰손’ 정부, 보는 눈은 까막눈… 작년 28억어치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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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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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 화백(1897∼1972)의 작품 ‘설경’(위)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휘호 ‘대도무문’(왼쪽).
이상범 화백(1897∼1972)의 작품 ‘설경’(위)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휘호 ‘대도무문’(왼쪽).
‘大道無門(대도무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좌우명인 이 휘호는 ‘정도(正道)를 가면 문이 없어도 갈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해 이 휘호와 함께 ‘신한국창조(新韓國創造)’ ‘역사바로세우기’ 등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서예작품 3점을 1000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신한국창조와 역사바로세우기 휘호는 김 전 대통령이 문민정부 시절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국회 사무처에서는 지난해 김석종 작가의 사진 7점을 구입해 각 정당 대표실에 걸었지만 의석수에 비례해 사진의 크기와 가격도 차이가 있었다. 한나라당에 걸린 사진은 400만 원, 창조한국당과 자유선진당은 300만 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미래희망연대당 민주당 등 4개 정당은 크기가 작은 200만 원짜리였다.

16일 동아일보가 조달청 등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구입한 미술품은 총 28억여 원어치였다. 또 각 부처에서 소장 중인 미술품 가액은 총 529억 원에 이르지만 부처별로 편중 현상이 심하고 미술계에서는 정부의 미술품 구입액이 적어 불만이 많다.

정부 부처별 차이가 큰 것은 부처마다 미술품의 가치에 대한 인식도 다르고 정해진 예산도 따로 없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그림 구입에 대한 지침이 없어 관심이 있는 기관장 등이 새로 와서 필요하다고 하면 자산 취득비에서 그림을 구입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미술품 관리도 허술하다. 정부 미술품 관리청인 조달청의 ‘사이버갤러리’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50만 원 이상 정부 미술품들의 보유처가 공개돼 있지만 이 중에는 복제 그림이 버젓이 올라와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이 사이트에는 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의 ‘여섯 마리의 닭’을 전남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갖고 있다고 나와 있지만 전남도선관위 관계자는 “2007년 즈음에 구입한 복제품으로 가격은 20만 원”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서울동부지검에서 유명화가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을 갖고 있다고 나와 있지만 복제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림을 보유한 기관 중 일반인이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거나 그림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기관도 없다. 국무총리실 소장 미술품 중 가장 고가인 이상범의 ‘설경’(2억 원)과 변관식의 ‘산수’(1억 원)는 모두 청사가 아닌 총리공관에 걸려 있다. 법무부는 5000만 원짜리 이상범의 ‘산수화’를 운영지원과 사무실에 걸어뒀다.

또 기획재정부에서는 1800만 원짜리 그림(이마동의 ‘무제’)을 그간 창고에 쌓아뒀다가 최근 감정평가 결과 가치가 높다는 걸 알고 장관 집무실에 걸어 놨다. 또 재정부는 2005년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연인이던 신정아 씨를 통해 정부 예산으로 구입한 800만 원, 1200만 원짜리 그림이 계속해서 구설에 오르자 일반인이 거의 없는 청사 지하 도서관과 운영지원과에 걸어 두었다.

윤범모 경원대 교수(회화과)는 “정부가 미술품 보유를 늘리고 관리시스템도 정비를 해야 미술계와 정부 모두 ‘윈윈’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미술품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정부에 많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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