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마을’ 改名 고맙지만… 어머니는 ‘아치울’ 이름을 사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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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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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시 ‘문학마을’ 조성 추진“고인은 보통사람으로 살고 책으로만 기억되고 싶어해”… 유족들 생전의 뜻 전달

“어머니는 생전에 아치울이란 이름을 사랑하셨어요. 마을 이름이 ‘박완서 마을’로 바뀌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네요.”

올해 1월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 씨(사진)가 살던 경기 구리시 아천동(아치울 마을)에 조성될 예정이었던 ‘박완서 문학마을’이 유족들의 뜻에 따라 중단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생전 자신의 이름을 단 행사나 사업에 ‘인색’했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유족들이 구리시의 사업 계획에 정중한 거절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올해 4월 구리시는 고인의 기념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경기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신인 고인이 1998년부터 별세할 때까지 13년 동안 살았던 아차산 자락의 아치울 마을을 ‘박완서 문학마을’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박 씨의 집 주변에 문학관, 문학공원, 문학비 등을 만들고 고인이 생전 작품을 구상하며 산책하던 장자호수공원∼대장간 마을∼아차산 고구려 보루를 잇는 ‘문학 둘레길’(약 4km)도 만들 예정이었다. 구리시는 ‘구리시 행정기구 및 정원 조례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기념사업 전담팀도 꾸렸다.

그러나 유족들은 5월 구리시에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혔다. 장녀 호원숙 씨(수필가)를 비롯한 유족들은 “어머니는 생전 지역사회를 사랑하셨고 아치울 생활을 좋아하셨다. 하지만 작가가 살고 있다고 해서 어떤 표지를 남기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셨다”며 “마을 이름이나 버스 정류장에 어머니의 이름을 넣는 것도 원하지 않았고 박완서 기념관도 바라지 않으셨다”고 설명했다. 또한 “어머니는 보통 사람들 속에서 살고 싶어 하셨고, 책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싶어 하셨다”며 사업 만류 의사를 밝혔다. 호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학마을 조성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도 원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학교나 도서관 주최로 학생들이 고인의 집에 찾아오는 ‘교육 프로그램’에는 협조하기로 했다.

구리시는 유족들의 의견을 고려해 관련 사업을 중단했지만 2009년부터 구리시 인창도서관에 운영 중인 박완서 자료실은 앞으로도 정상 운영한다. 이곳에는 ‘나목’의 초판을 비롯해 고인의 작품 177점과 친필 원고,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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