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예정지 사전환경조사 부실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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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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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산작약 깔아뭉개고… 담비 - 삵 잇달아 발견되고…

최근 대규모 개발 예정지에서 멸종위기 동식물이 뒤늦게 발견돼 정부의 사전환경영향 조사가 부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동아일보DB
최근 대규모 개발 예정지에서 멸종위기 동식물이 뒤늦게 발견돼 정부의 사전환경영향 조사가 부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동아일보DB
최근 골프장 등 대규모 개발 예정지에 멸종위기 동식물이 뒤늦게 발견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해 정부의 환경조사가 부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대형 개발공사는 해당 지역의 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전 환경조사가 엄격히 이뤄져야 한다”며 “어떻게 정부가 ‘개발해도 지장 없다’고 평가한 곳에서 나중에 멸종 위기 동식물이 발견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 골프장 공사하다 멸종위기 산작약 깔아뭉개

21일 환경단체인 녹색연합과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에 따르면 강원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내 A골프장 건설현장에서 19일 ‘산작약’이 훼손된 채 발견됐다. 산작약은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식물로,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해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됐다. 멸종위기종은 야생동식물보호법에 따라 채취, 포획 등 훼손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이날 발견된 4그루의 산작약은 골프장 건설을 위해 벌목하는 과정에서 잘린 나무에 깔려있었다. 산작약은 생육 특성상 그늘진 곳에서 살기 때문에 주변 나무숲이 훼손되면 고사하게 된다. 녹색연합 측은 “벌목 과정에서 이미 많은 산작약이 죽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A골프장 공사로 산작약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경고가 이미 2년 전에 제기됐다는 점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09년 국정감사에서 A골프장 예정지에 산작약이 자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환경부 산하 원주지방환경청은 산작약이 A골프장 공사 과정에서 훼손되지 않도록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최근 골프장 벌목과정에서 산작약이 고사하게 된 것. 원주환경청 관계자는 “벌목공들이 멸종위기종인지 모르고 작업을 한 것 같다”며 “강원도에 공사 중단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강원 강릉시 구정면 내 B골프장 예정지에서도 최근 멸종위기종 담비(2급)와 삵(2급)이 발견됐다. 시민단체인 ‘강릉생명의 숲’이 5월 해당 골프장 터 안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조사한 결과 담비와 삵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포착됐다. 담비와 삵은 모피를 위한 불법 밀렵과 숲의 훼손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담비의 경우 행동반경이 59.1km²로 넓은 데다 사람처럼 낮에 활동해 서식지가 골프장으로 바뀌면 고사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강원도에서 41개의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또 케이블카가 설치될 예정인 강원 화천군 백암산 민간인통제선 지역에서는 멸종위기종 1급 동물인 사향노루가 최근 발견됐다. 비무장지대 바깥 지역에서 사향노류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이들 산작약 담비 사향노루 등은 정부의 사전 환경성 검토나 환경영향평가에서 누락돼 있었다. 국내에서 숲이나 산을 골프장 등으로 개발하려면 1차로 사업자가 개발희망지에 대해 사전 환경성 검토를 한 후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사전 환경성 검토는 환경정책기본법에 근거해 개발사업 전 대상지의 생태 환경을 조사해 개발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절차. 이를 통해 법적 보호종(멸종위기종) 서식 여부, 개발 시 자연훼손 영역 등을 분석한다. 사전 환경성 검토에서 정부의 개발 승인이 떨어지면 2차로 사업 추진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한 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해야 한다.

앞선 사례처럼 사전 환경조사에서 멸종위기종이 존재하지 않아 개발이 허락된 곳에서 공사가 시작돼 자꾸 멸종위기종이 나오자 제도 자체가 부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

○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대대적인 보강 필요

환경전문가들은 “사전 환경조사를 할 때 개발사업자는 환경부가 승인한 전문 용역업체를 자체적으로 선정해 조사를 대행시킨다”며 “환경조사 전문업체들이 사업자에게서 돈을 받고 일하다 보니 환경조사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주녹색연합 이승현 사무국장은 “깐깐한 환경조사업체는 사업자에게 외면당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업체들이 사업자 입맛에 맞게 조사하다 보니 부실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전 환경조사 결과를 검토하는 정부가 부실한 조사를 묵인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 환경부가 사전 환경조사 결과를 보고 개발을 제한하는 경우는 계속 줄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사전 환경성 검토에서 사업에 제동을 거는 부동의(不同意) 결정을 내린 비율이 2001년 6.4%, 2005년 2.9%, 2008년 1.6%, 지난해 0.9%로 점점 하락했다.

환경부 국토환경정책과 관계자는 “공사 지역이 워낙 넓은 데다 멸종위기 동식물을 미처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해명했다. 이 밖에 사전 환경조사에서 고의로 멸종위기종을 누락시켜 적발되더라도 과태료가 1000만 원 이하에 불과해 사업자들에게는 ‘일단 걸리지 않고 사전 환경조사만 무사히 넘기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환경부는 △벌금, 영업정지 등 제재 조치 강화 △환경영향평가사 등 국가기술자격제도 수립 △자연생태 조사 전문업 신설 등을 골자로 하는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을 22일 국회 법사위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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