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존을 향해]아름다운 재단과 함께하는 레인메이커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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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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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후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기부계의 ‘큰손’으로 불릴 만하다. 지난해 통계청이 조사한 연령별 기부 현황에 따르면 60대 기부자가 5만1000명, 70대 이상이 1만3000명이었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수는 적지만 이들의 1인당 기부액은 어느 연령층보다 많았다. 특히 70대 이상의 1인당 기부액은 630만 원으로 20대 이상(97만4000원)의 6배가 훌쩍 넘었다. 이들은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현직에 있을 때 하지 못했던 나눔을 실천하려는 욕구도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제적 여유와 기부하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일회성, 감성적 기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최근 현직에서 물러나 개인과 사회를 위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사회지도층을 만나 바람직한 은퇴 후 삶과 나눔에 대해 들어봤다. 》
○ 은퇴前 봉사계획 세운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이찬승 대표

이찬승 대표
이찬승 대표
비영리단체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이찬승 대표(62)는 영어교육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한 능률교육을 지난해 매각했다. 30년간 자식처럼 키운 회사의 회장직을 포기하고 경영권에서 손까지 뗀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 국내 공교육을 다시 디자인해 보겠다는 오랜 꿈을 이루고 싶어서였다. 그는 “다들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이라며 말렸다. 그러나 나는 급소를 건드리면 가능하다고 봤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3월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이 설립됐다. 현직에 있을 때 외국 학회를 다니며 틈틈이 모은 자료와 인맥을 밑천으로 삼았다. 하지만 단체를 재단법인으로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기부금에 대해 세액 혜택을 주려면 공익법인으로 인가가 나야 하는데 이를 위한 요건을 갖추는 게 까다로웠다. 이 대표는 “좋은 일도 의욕만으로는 힘들더라”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결국 현재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은 개인 민간단체로 운영되고 있다. “나누고 싶다는 철학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전문가, 돈의 삼박자가 맞아야지 나눔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거죠.”

그는 백지 상태로 돌아가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교육을 바꾸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 외에 ‘무엇을 실행에 옮길 것인가’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다. 이 대표는 교육 현장부터 찾았다. 학교와 지역공부방 등에서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며 구체적인 목표와 과제부터 다듬었다. 그 결과 △소외계층 △학교 △교육정책으로 세부 목표를 나눴다. 현재 소외계층을 위해서는 지역공부방 교사들의 전문성 프로그램과 교재 개발을 준비 중이며, 학교를 위해서는 문제아를 맡고 있는 교사들에게 뇌과학운동을 펼치고 있다. 교육계 정책에 참고할 만한 교육 관련 백서 제작도 기획하고 있다.

6일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가족과 은퇴 후 처음으로 떠나는 여행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도 오전 5시에 일어나 출근했다고 했다. 여가를 즐기며 쉴 때도 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현직 때보다 더 절박하게 살고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죽기 전에 이거 하나는 꼭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날마다 더 초조해진다”는 것이었다.
○ ‘목숨만 빼고 다 양보하라’ 평생실천 박홍이 교수


박홍이 교수
박홍이 교수
지난해 은퇴한 연세대 박홍이 교수(68·물리학)는 학교에 올 때마다 항상 백팩(어깨에 메는 배낭)을 메고 다닌다. 현직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대신 그의 명함에 새겨진 직업명은 더욱 다양해졌다. 퇴임 후 사용하려고 만들었다며 건넨 명함에는 ‘영어 달인(master in English), 번역, 동시통역, 영어개인교습’ 등이 적혀 있다. 그뿐만 아니다. 요즘도 교양수업으로 검도 강의와 물리학 강의 외에 어학센터에서 한글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고 있다.

최근 구상 중인 또 다른 사업은 음악학교 개교 작업. 모든 강의가 끝나는 2015년 10월 말부터 학교를 열기 위해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다가올 여름방학에는 조직을 어떻게 꾸려갈지와 자금을 모을 방법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음악학교는 음악을 매개로 한 멘터 스쿨. 5년간 멘터가 어려운 환경에 처한 멘티의 음악교육을 비롯한 인생 전체를 책임진다. 5년 후부터 실행에 들어갈 음악학교를 위해 그는 나눔 통장을 만들어 돈을 모으고 있다.

교내외에서 ‘기부왕’으로 통하는 박 교수지만 현직에서 물러나며 봉사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조금 변했다고 털어놨다. 욕심은 줄어들었지만 마음이 어느 때보다 급해졌다는 것이다. “살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에만 그렸던 나눔을 빨리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그 이유다. 이런 까닭에 그는 은퇴 세대들에게 철저한 계획과 자연스럽게 몸에 밴 나눔의 습관을 당부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은 ‘목숨만 빼고 다 양보해라’였어요. 기부는 습관이고 연습이죠. 은퇴하고 여유가 생겼다고 하루아침에 나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많이 나눠본 사람이 잘 나누는 거죠.” 은퇴 후 그는 아름다운재단에 ‘박홍이 휘스퍼링호프 기금’을 만들어 500만 원이 모일 때마다 채워 넣는다.

요즘도 오전 4시에 일어나 영어사전을 외운다는 그는 102번째 영어 단어장을 보여줬다. 빼곡히 적혀 있는 글씨만큼 그의 인생은 나눔 계획들로 빽빽이 채워졌다. 그는 은퇴 후 나누는 삶을 ‘100m 경주’에 비유했다. “사람이 100m 경주를 하는데 98m에서 천천히 가는 거 봤나요?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재가 될 때까지 나누고 또 나눠야죠.”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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