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 스포츠 산업… 美는 날고 日은 뛰고 한국은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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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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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의 홈구장인 도쿄돔은 스포츠마케팅의 전쟁터다. 야구경기가 열리는 도중에도 각종 야구용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그라운드 내야와 외야에는 기업을 홍보하는 광고판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스포츠는 이제 의류, 팬시상품, 중계권, 게임에 이르기까지 거대 산업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도쿄=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야구 보시면서 시원한 맥주 한잔 어떠십니까?” 김태균이 소속된 지바 롯데의 홈구장인 마린필드에서 아사히, 기린, 삿포로 상표를 단 맥주걸들이 맥주 판매 경쟁을 하고 있다. 한 잔에 800엔(약1만7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하루에 수천 잔이 팔린다. 지바=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야구 보시면서 시원한 맥주 한잔 어떠십니까?” 김태균이 소속된 지바 롯데의 홈구장인 마린필드에서 아사히, 기린, 삿포로 상표를 단 맥주걸들이 맥주 판매 경쟁을 하고 있다. 한 잔에 800엔(약1만7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하루에 수천 잔이 팔린다. 지바=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장면1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도쿄돔. 이곳은 스포츠마케팅 전쟁터다. 경기 중 아사히 기린 삿포로 등 생맥주통을 어깨에 멘 여성들이 관중석 주위를 돌며 “한잔 어떠십니까”를 외친다. 그라운드 주변에는 전자제품 건설 보험 등을 홍보하는 광고판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TV에 자주 나오는 포수 뒤편 펜스의 1년 광고료는 1억 엔(약 14억 원)에 이른다.

#장면2 꽃미남 프로골퍼 이시카와 료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다. 지난해 인기그룹 ‘스마프’의 기무라 다쿠야를 제치고 TV 광고 출연 1위(14편)를 기록했다. 경기에 나서는 그의 모자와 옷 등에는 요넥스, 파나소닉, 도요타 같은 대기업 로고가 붙어 있다. 이시카와에게 투자하는 스폰서 기업은 10여 개나 된다.

○ 스포츠, 광고와 마음이 통하다

스포츠는 이제 ‘순수’하지 않다. ‘국민의 단합과 건강한 신체’를 목표로 한 올림픽은 이제 대기업의 홍보대리전이 됐다.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월드컵은 방송사들에게 황금 알(광고 수입)을 낳는 거위가 됐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스포츠 산업은 해마다 성장세다. 스포츠마케팅의 중요성 역시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스포츠산업은 아직 초보 수준이다. 2008년에 26조3614억 원 규모로 미국(약 230조 원), 일본(약 123조 원)에 못 미친다(표 참조).

일본은 3월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프로야구 일정이 2주 이상 연기됐다. 하지만 야구는 여전히 최고 인기 스포츠다.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를 보면 스포츠산업의 격차는 확연하다. 일본은 2006년 연간 리그 수입이 1100억 엔(약 1조5000억 원)으로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 수입(약 1050억 원)의 10배가 넘었다.

스포츠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미즈노 아식스를 세계적인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유치하며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이 됐지만 스포츠 브랜드는 전무하다.

○ 대기업, 스포츠 스타와 국제 이벤트 잡기

기업과 스포츠 스타는 찰떡궁합이다. 일본 음료업체 기린은 일본 축구대표팀과 스폰서십을 체결했다. 대표팀 선수들은 기린 로고가 찍힌 유니폼을 입는다. 경기 직후에는 기린의 음료 광고판을 들고 사진 촬영을 한다. 기린은 아사히맥주 등 경쟁업체를 꺾기 위해 매년 수억 엔을 쏟아 붓고 있다.

대기업이 스포츠 이벤트에 스폰서십을 맡는 이유는 경기장 시설이나 선수의 유니폼에 자사 브랜드를 부착해 자연스러운 노출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스포츠의 정직한 이미지와 역동성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 스포츠산업 활성화와 브랜드 업그레이드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 도시들은 도시 마케팅을 함께 진행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일본 나가노는 1998년 겨울올림픽을 연 뒤 세계적인 레포츠 명소로 거듭났다. 인구가 2만5000명에 불과한 노르웨이 릴레함메르는 1994년 겨울올림픽 이후 연간 2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한국은 올해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을, 2014년에는 인천에서 아시아경기를 연다. 평창은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겨울올림픽을 유치하면 경기장 건설과 관광객 증가 등으로 생산 유발 11조5000억 원, 부가가치 유발 5조1000억 원, 고용유발 14만4000명이 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평창 유치위는 전망했다.

김종 한양대 교수(스포츠산업학)는 “이제는 스포츠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한다. 아식스 같은 브랜드를 세계화시킨 일본의 마케팅과 디자인 전략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지난 1년간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후원으로 일본 와세다대에서 연수한 스포츠레저부 황태훈 차장의 보고서입니다.
:: 스포츠 산업 ::

스포츠와 관련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 유통시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 스포츠 시설을 건설 운용하고 스포츠 용품의 생산 및 유통, 스포츠 관람 및 마케팅 산업, 게임 등을 총칭한다.
▼ “빈곤층도 스포츠 즐길수 있어야”… 리 톰프슨 와세다大 교수 ▼


“스포츠산업 규모가 커질수록 가난한 이들은 스포츠를 즐길 기회가 줄어듭니다. 이들을 배려하는 정책이 필요하죠.”

일본 와세다대 스포츠과학학술원 리 톰프슨 교수(55·사회학·사진)는 “세계의 스포츠산업이 가진 자만을 위한 잔치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포츠 프로그램이 유료화 추세고 경기 입장료도 많게는 수십만 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톰프슨 교수는 스포츠산업이 각국의 국내총생산(GDP) 증대 등 경제성장에 기여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무료나 저렴한 가격으로 즐기던 스포츠가 미디어의 과도한 중계권 경쟁 등으로 그 부담이 서민에게 전가되는 문제가 생겼다고 비판했다.

“199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하버드대 아마르티아 센 교수가 주장한 ‘후생 경제학’처럼 경제발전이 사회 전체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스포츠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빈곤층에까지 혜택을 주지 않기 때문이죠.”

그는 요즘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보면 돈에 오염된 느낌이라고 했다. 인기 스포츠일수록 수많은 광고가 등장한다.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스포츠 경기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이 때문에 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막대한 돈이 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전한 스포츠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톰프슨 교수는 “과거에는 아마추어리즘을 건전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정부 차원에서 많은 사람이 쉽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세계는 지금 ‘중계권 빅리그’ 중 ▼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는 올해 박찬호에게 연봉 2억5000만 엔(약 33억 원), 이승엽에게 1억5000만 엔(약 20억 원·이상 추정)을 주고 입단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 대신 한국의 한 케이블TV로부터 중계권료로 1억 엔(약 13억 원)을 챙긴 것을 비롯해 의류 등 관련 상품 판매 등으로 두 선수의 연봉을 회수하고 있다. 일본 스포츠 관계자들은 “오릭스는 한국 선수를 이용해 구단과 모기업 홍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라고 말했다.

야구뿐만 아니라 올림픽과 월드컵 등 메이저대회의 중계권료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왔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중계권료로 50만 달러를 냈다. 하지만 1988년 서울 대회 때는 5000만 달러, 2008년 베이징 대회는 1억8000만 달러를 내야 했다. 44년 만에 중계권료가 360배나 오른 셈이다.

미국 NBC는 20억 달러(약 2조1600억 원)에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2012년 런던 여름올림픽 패키지 중계권을 따냈다. 거액을 투자한 것 이상의 이익이 나오기 때문이다. NBC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광고수익으로 1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시청률이 50%를 넘으면서 광고 효과를 극대화한 덕분이다.

SBS가 다른 방송사들로부터 ‘공동 중계의 룰을 깼다’는 비난 속에서도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과 남아공 월드컵을 단독 중계한 이유도 광고 수입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계권료 부담은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비판이 나온다.

황태훈 차장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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