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밤길 안전 어르신이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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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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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실버 순라군’ 3년째 운영… 65세이상 125명 하루 2시간 순찰
골목길 돌며 어린이-여성 귀가 도와

7일 오후 8시 서울 강서구 화곡6동 백연공원에서 ‘실버 순라군’으로 활동하는 윤철중 씨(왼쪽)와 조종수 씨가 공원을 찾은 초등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125명으로 구성된 강서구 실버 순라군은 조선시대 순라군 복장을 한 채 골목길, 공원 놀이터 등을 돌며 어린이나 여성의 귀가를 도와준다. 강서구 제공
7일 오후 8시 서울 강서구 화곡6동 백연공원에서 ‘실버 순라군’으로 활동하는 윤철중 씨(왼쪽)와 조종수 씨가 공원을 찾은 초등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125명으로 구성된 강서구 실버 순라군은 조선시대 순라군 복장을 한 채 골목길, 공원 놀이터 등을 돌며 어린이나 여성의 귀가를 도와준다. 강서구 제공
“얘들아, 거기서 뭐해. 얼른 집에 가야지.”

7일 오후 8시 서울 강서구 화곡6동 백연공원. 어르신의 걸걸한 훈계 소리가 들리자 공원 속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대로 얼어버렸다. ‘차렷’ 자세를 취한 아이들. 그러나 긴장감도 잠시. 빨간 순찰복을 입은 조종수 씨(77)와 파란 순찰복 차림의 윤철중 씨(79)에게 아이들은 “할아버지 누구세요?” “조선시대 사람 같아요”라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등장한 지 1분도 안 돼 아이들의 시선을 뺏은 이들. 곧바로 정체를 밝혔다.

“우리는 동네를 지키는 큰 어른, ‘순라군(巡邏軍)’이지!”

○ 조선시대에서 온 할아버지들


“순라군이 뭐예요?”

아이들이 순라군을 알 리 만무하다. “조선시대에 동네를 지키던 군인”이라는 대답이 이어지자 아이들은 “우와 조선시대에서 왔어요?”라며 ‘천진난만한’ 반응을 늘어놓았다. 이해가 됐든 안 됐든 이날 공원에서 놀던 아이들은 순라군 두 명의 ‘지침’을 받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경찰도, 방범순찰대도, 학교 보안관도 아닌 이들의 정체는 ‘실버 순라군’. 순라군은 조선시대 도둑이나 화재를 막기 위해 궁중이나 성 주변을 순찰하던 군인을 뜻한다. 강서구에 이 제도가 도입된 것은 3년 전인 2009년부터. 강서구는 만 65세 이상 인구수가 4만9070명으로 양천구(3만8163명) 영등포구(4만485명) 등 주변 지역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을 구상하던 중 한 간부가 조선시대 순라군 제도 얘기를 꺼낸 것. 곧 “순라군을 주제로 한 명예 동네 순찰대를 만들자”는 얘기로 진행됐다. 구 자체 예산(8800만 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도 7일부터 125명의 노인들이 2, 3명씩 한 조를 이뤄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2시간 동안 으슥한 골목길, 비행 청소년이 많은 공원 놀이터, 건물 후미진 곳 등을 돌며 청소년 선도를 하고 있다. 강서구 관계자는 “이들은 조선시대 순라군이 순찰 시 사용했다는 박달나무 ‘딱따기’ 등 소품까지 순라군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말했다.

○ “할아버지가 뭔데…”에 상처 받아


실버 순라군의 급여는 1회 2시간에 7000원. 큰돈은 아니지만 윤 씨는 “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육군 장교로 퇴직한 그는 소일거리라도 찾기 위해 구청을 들락날락했다.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 그러던 중 실버 순라군 제도는 전직 군인 출신인 그에게 ‘천직’이나 다름없었다. 윤 씨는 “하지만 포졸 복장은 아직 집에서 입고 나오지 못한다”며 웃었다.

“순찰 활동은 효과가 있느냐”는 질문에 조 씨는 손사래를 친다. 놀이터에 개를 데려와 개똥을 치우지도 않고 가는 20대 여성에게 주의를 주자 “나 대학 나온 여자라 알고 있다”며 오히려 대든 일은 약과다. “담배꽁초 아무데나 버리지 말라”는 말에 “할아버지가 뭔데”라며 달려드는 10대 청소년들에겐 신변 위협도 느낀다. 이들은 단속 활동만 할 뿐 처벌하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 순라군 제도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강서구 관계자는 “실버 순라군 제도를 잘 모르는 일부 젊은층에서 돌출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실버 순라군 활동을 적극 알려 이들의 권위를 세워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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