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맞고 배웠는데… 고인 된 은사 모독”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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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논란 김인혜 교수 “나도 그렇게 배웠다” 해명… 같은 스승에게 배운 교수들은 발끈

“잘못을 반성하지도 않고 자기변명 하려고 돌아가신 스승님을 모독하다니요.”

서울대 음대 성악과 A 교수는 최근 가르치던 제자들을 폭행했다는 진정이 학교 측에 제기돼 논란을 빚고 있는 김인혜 서울대 음대 교수(49·성악과)의 ‘나도 그렇게 배워 잘못인 줄 몰랐다’는 해명에 버럭 화를 냈다. 김 교수는 메조소프라노의 대모로 불렸던 고 이정희 교수의 제자다. 이 교수는 1998년 9월 타계했다. 김 교수는 1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대를 다닐 때 엄격한 도제식 교육 방식으로 지도를 받았다. 대학 때 지도교수님께 하도 무섭게 혼이 나 울었던 기억이 많이 난다”며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워왔고 또 그렇게 가르쳐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해명에 고 이 교수의 제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본보 17일자 A2면 “나도 혼나고 울어가며 배워 잘못된 거라 생각…

○ “김 교수 변명은 스승 매도하는 것이다.”

1970년 서울대 음대에 입학해 4년간 고 이 교수에게 성악을 배우고 현재 서울 시내 한 대학에서 근무하는 B 교수(59)는 “김 교수의 해명 기사를 보고 동기들이 모두 놀라 전화를 주고받았다. ‘선생님이 우리를 때리면서 가르쳤어?’ 하며 속상해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교수님은 엄격한 분이었지만 제자 누구도 맞거나 때리는 걸로 오해할 수 있는 감정적인 행동은 하신 적이 없다”며 “지금도 선생님의 교육 방법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는데 존경하는 스승이 매도당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고 이 교수가 서울대 음대에 재직할 당시 5년간 피아노 반주를 했다는 피아니스트 C 씨(54)는 “엄격한 선생님이셨지만 폭행은 생각할 수도 없는 분이었다. 청렴하기까지 해 밑에서 일하는 동안 작은 선물이라도 드리려고 하면 ‘뭐하는 짓이냐’며 크게 화를 내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김 교수가 10년 전부터 학생을 때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언젠가는 문제가 불거질 줄 알았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대학 음대에서 성악을 가르치는 D 교수(53·여)는 “(이런 일이 일어나) 제자들 모두가 선생님을 욕되게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며 흐느꼈다. 그는 “이 교수님은 방학 중 레슨을 받을 때 레슨비를 많이 가져가면 ‘왜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하며 돌려주고 형편이 어려워 오디션 준비를 못하는 제자에게 돈을 쥐여주기도 했었다”며 “우리에게도 ‘물질적인 것에 욕심내지 말라’고 가르치셨다”고 전했다. 성악 교육 방식에 대해서도 “1 대 1 레슨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도제식 교육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도제식 교육이라고 해도 폭력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20여 년 전 서울대에서 강의를 할 때 고 이 교수의 연구실을 빌려 쓰기도 했다는 신영자 성신여대 성악과 교수(66)는 “김 교수의 해명은 고 이 교수에 대한 명예훼손일 뿐 아니라 성악 하는 사람들까지 매도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분개했다.

○ 서울대 징계위원회 소집

서울대는 다음 주 중으로 징계위원회를 소집할 예정이다. 서울대 김홍종 교무처장은 “15일 김 교수를 불러 해명할 기회를 줬다. 김 교수가 남편과 함께 와서 ‘지금 당장은 답변을 못 하겠다’고 부탁하기에 다음 날 정오까지 기한을 연장해줬다”며 “그런데 지금까지 답변을 미루고 피해 학생과 학부모를 찾아가 입막음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어떤 부분을 폭력으로 오해했는지 궁금해 학부모를 찾아갔던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김 교수 측은 21일까지 답변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이날까지 답변이 오지 않으면 해명을 거부한 것으로 보고 예정대로 징계위원회를 열 방침이다. 김 처장은 “이미 다수의 증언을 확보했으며 피해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징계 절차를 가급적 빨리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상습적으로 제자를 폭행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해임 등의 중징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의 징계 절차와 별도로 김 교수와 서울대 간 법적 공방도 예고됐다. 김 교수는 변호사를 통해 “개인에게 중대한 사안을 충분한 소명 절차 없이 서둘러 조사를 진행하려 했다”며 공식 항의한 상태다. 김 처장은 “법정으로까지 끌고 가겠다면 학교도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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