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20cm 눈 피해 ‘강원 140cm’만큼 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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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설장비 부족… 일부 지자체 “눈 녹기만 기다려”

14일 내린 눈 때문에 영남권이 마비됐다. 강원도가 11, 12일 내린 눈으로 엄청난 피해를 본 데 이어 영남권도 눈폭탄을 맞아 동해안이 쑥대밭이 된 것이다. 14일 영남권에 내린 눈(20cm 안팎)은 강원도에서 11∼14일 내린 눈(동해 140cm 안팎)보다 훨씬 적었지만 피해는 강원도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컸다. 눈이 자주 내리는 강원도가 제설장비를 잘 갖추고 공무원들도 폭설 대처 훈련이 잘된 반면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영남권의 자치단체들은 ‘폭설 대비 매뉴얼’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다 영남권 기상청의 늑장 예보에다 운전자들이 눈길 운전에 미숙한 것도 피해를 키운 원인이 됐다.

○ 도심 도로는 거대 주차장

14일 오후 4시경 울산 동구 남목고개 앞 도로. 경찰과 공무원 등 20여 명이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현대중공업으로 통하는 이 도로는 이날 오후 3시 40분을 기해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됐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창사(1972년) 이후 폭설 때문에 이 도로가 전면 폐쇄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구와 부산 울산 경남북 등도 도심 간선도로를 제외한 이면도로와 산간도로 80여 곳에서 차량 통행이 제한됐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폭설로 야간조 근로자(1만5000명)의 출근에 차질이 예상되자 14일 오후 9시부터 시작하는 야간조 조업을 전면 취소했다.

도심 도로도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 이날 새벽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한 대구시의 수성구에 사는 이모 씨(51)는 “평소 20분 정도 걸리던 출근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려 지각했다”고 말했다. 울산석유화학공단 내 한 기업체 관계자는 “평소 8시 반 안에 모든 통근 차량이 회사로 들어오는데 14일은 3분의 1가량이 오전 9시를 넘겼다”며 “1시간 이상 지각한 차량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해국제공항에서는 이날 항공기 170편 가운데 150편이 결항됐다. 울산과 포항공항도 대부분 항공기의 운항이 취소됐다.

○ 눈길 운전 미숙…사고 속출

이날 오전 5시경 대구 수성구 가천동 범안로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던 박모 씨(43)의 1t 포터 차량이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가로등을 들이받아 박 씨가 숨졌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2시 40분경에는 경북 영주시 휴천동 도로를 지나던 한모 씨(23)의 승용차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넘어 건너편에 있던 전신주와 충돌해 한 씨가 중상을 입었다. 울산에서도 이날 남구 공업탑로터리에서 차량이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뒤엉켜 충돌사고가 발생하는 등 10여 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부산과 경남에서도 모두 150여 건의 크고 작은 눈길 미끄럼 사고가 있었다. 이날 울산지역 380여 개 초중고교가 휴교하는 등 오후 6시 현재 영남권 학교 600여 개가 휴교 또는 단축 수업을 했다. 부산과 대구지방기상청이 하루 전까지 대설 관련 특보를 발령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우왕좌왕 제설 작업

영남권에 10여 년 만에 내린 눈폭탄은 제설장비 부족에 제때 제설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대구시의 경우 염화칼슘 살포차량 65대와 제설기 45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제설작업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달구벌대로의 차량 통행 속도는 시속 10km 미만으로 떨어지는 등 영남권 도심 도로 대부분에서 차량 정체가 극심했다. 울산시가 보유하고 있는 제설장비는 트럭을 제외하면 제설기 28대와 염화칼슘 살포차량 27대뿐이다. 이 때문에 울주군과 북구 등 외곽도로에는 제설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햇볕에 눈이 녹기만 기다리는 실정이다. 울산대 공공정책대학원 이달희 교수는 “10여 년 만에 한 번 내리는 폭설에 대비해 영남권 자치단체가 많은 예산을 들여 제설장비를 자체적으로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하지만 자치단체 간에 제설장비를 유기적으로 빌려주는 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강원 동해안 지역은 민관군의 대대적인 합동 제설작업으로 도로 기능이 정상화됐지만 주민 불편은 사흘째 이어졌다. 폭설로 고립됐던 18개 마을 640여 가구는 제설작업을 통해 3개 마을 95가구를 제외한 지역이 고립상태에서 풀렸다. 특히 육군 23사단은 동해시 만우동 생계골에서 고립된 한판심 씨(93)를 구조하기도 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강릉=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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