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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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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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토끼해 고교생 4인의 포부

2011년 토끼해가 밝았다. 지난해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일의 희망을 설계할 때다. 전국 각지의 고교생은 새해 어떤 계획을 세웠을까. 저마다 간절한 소망을 담아 큰 걸음을 내딛는 고교생 4명을 만났다. 4인 4색, 이들의 소중한 비전을 들여다보자.


○“한국 최초의 F1 드라이버가 될 거예요”

지난해 12월 20일 ‘2010 한국모터스포츠대상’ 시상식장. 최고의 카트 드라이버에게 수여되는 ‘올해의 로제타스톤 카트 드라이버상’은 고교생에게 돌아갔다. 주인공은 경기 늘푸른고 1학년 서주원 군(17). 그의 꿈은 한국인 최초의 ‘국제자동차연맹(FIA) 포뮬러1 월드챔피언십(F1)’ 선수가 되는 것이다.

서 군은 현재 고교생 카트 드라이버로 활동하고 있다. 카트 레이싱은 세계 최고의 자동차경주대회인 F1의 드라이버가 되기 위한 첫 단계다. 그는 초등생 때부터 F1 경기 중계방송을 챙겨봤다. 첨단 머신을 타고 서킷을 최고 시속 350km로 질주하는 F1 드라이버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서 군은 중2 때 카트 레이싱을 시작했다.

“초등 2학년 때부터 6년간 아이스하키 선수생활을 했어요. 생소한 카 레이싱에 도전하는 건 모험이었죠. 하지만 레이싱을 보면서 가슴이 쿵덕쿵덕 뛰는 저 자신을 보면서 ‘내가 갈 길은 이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훈련은 쉽지 않았다. 주중에는 학교수업을 들으며 오후 9시 반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밤늦게 귀가하면 부족한 연습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2∼3시간씩 레이싱 시뮬레이션 기계로 가상 훈련을 새벽까지 했다. 실전연습을 위해 주말도 반납했다. 토요일에는 소속팀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습에 매달렸다. 집에 가지 않고 1박 2일간 구슬땀을 흘렸다. 그 결과 ‘2010 코리아카트챔피언십’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새해에는 카트 레이싱보다 한 단계 위인 ‘포뮬러 BMW 퍼시픽’에 도전할 계획이다. 2일부터 말레이시아의 세팡 서킷에서 ‘포뮬러 BMW 퍼시픽’ 프로팀 테스트를 받고 있다.

“불합격해도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 한국 최초의 F1 드라이버의 꿈을 꼭 이룰 거예요.”


○“친구가 필요해? 저를 ‘팔로우’하세요”

서울디지텍고 2학년 김예찬 군(18)은 ‘청소년당’의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해 7월 개설된 이 당은 현재 ‘당원’만 361명에 달한다. 새로 생긴 정치단체라고 생각하면 오산. 이 모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트위터에 개설된 청소년 모임이다. ‘당’은 관심사가 같은 트위터 사용자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공간을 말한다. 김 군은 트위터에 대학생, 직장인 모임은 많지만 청소년을 위한 모임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청소년당을 만들었다.

“매일 이곳에 모여 학교생활, 고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눠요. 클릭 한 번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백 명의 친구를 사귈 수 있죠.”

김 군은 새해에 청소년당의 네트워크를 강화할 계획이다. 당원 1000명 돌파가 목표다. 다른 청소년 모임 ‘당주’들에게 연락해서 ‘동맹(서로 다른 트위터 당끼리 주소를 연결하는 것)’도 맺을 생각이다.

“1, 2월 중에 오프라인 정모(정기모임)도 계획하고 있어요. 오프라인까지 모임을 확장해 ‘청소년 네트워크’를 구축할 생각이에요.”


○“꿈을 이루어주는 주문을 외워요”

전남 해룡고 1학년 조효진 양(17)의 꿈은 ‘문화재 보존원’이다. 문화재 보존원은 궁궐, 사찰, 미술품 같은 유형문화재를 보존하고 수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조 양은 지난해 초 교육방송(EBS)이 방영한 프로그램에서 문화재 보존원의 활동상을 보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원래 조 양의 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역사학자, 또 다른 하나는 생물학자.

“TV에서 국립중앙박물관 보존처리팀이 오래된 문화재를 보존처리하는 모습을 보는데 심장이 마구 뛰었어요. 제가 바랐던 두가지 꿈을 동시에 이룰 수 있기 때문이죠. 그 순간 제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조 양은 전통문화 관련 캠프에 참여하고 현직 문화재 보존원을 만나며 꿈을 구체화했다. 전통문화 관련 웹사이트 20개를 찾아 문화재 보존과정을 독학해 정리노트를 만들었다. 충남 부여에 있는 국립대학인 한국전통문화학교에 진학할 계획도 세웠다. 새해에는 자신만의 동기부여 방법을 실천할 계획이다. 자신의 꿈을 하루에 15번씩 쓰는, 이른바 ‘마법의 문장’을 완성해 가는 것. 조 양은 ‘나는 한국전통문화학교 보존과학과 13학번 조효진이다’란 문구를 매일같이 쓰면서 꿈과 목표를 다질 것이다.

“올해 전국 주요 박물관을 돌아보고 한국 문화재를 연구하는 전국적인 규모의 학생 동아리도 만들 계획이에요. 2011년은 문화재 보존원이 되기 위한 토대를 다지는 한 해가 될 거예요.”


○“어머니의 눈물을 본 적이 있나요?”

지난해 9월 인천 부평고 2학년 백승엽 군(18)은 친구 서용민 군과 함께 7분 50초짜리 단편영화를 찍었다. 제목은 ‘푸줏간집 딸인 우리엄마’. 이 영화는 ‘2010 국제 청소년 영상대전’ 금상, ‘제7회 신세대 KBS VJ 콘테스트’ 최우수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는 백 군의 어머니 김영순 씨(47) 이야기다.

영화감독이 꿈인 백 군은 영화를 찍으며 그동안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셨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영화를 찍기 전에는 어머니랑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어요. 어머니의 삶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던 거죠.”

백 군 어머니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고 소아마비를 안고 태어난 남동생을 돌봤다. 24세부터는 정육점을 운영하며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어머니는 골다공증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치매로 쓰러진 시어머니의 수발도 5년간 도맡았다.

“어머니는 매일 오후 11시까지 일하며 시어머니를 모셨어요. 대소변을 못 가리는 시어머니 빨래를 하루 세 번씩 하셨죠. 3시간밖에 못 주무셨지만 힘든 내색을 하신 적은 없죠. 저는 예전엔 누구나 다 그런 줄 알았어요.”

백 군은 새해에는 어머니께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영화제 상금으로는 여행을 보내드릴 생각이다.

“새해 계획요? 매일 5분이라도 어머니와 대화하는 시간을 꼭 가질 거예요.”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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