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명지대교수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展 현장서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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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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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박또박 써내린 육필에 ‘아~’… “혜초는 1300년전의 백남준”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눈물나는 시입니다.” 2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
앙박물관을 찾은 유홍준 교수가 제자들에게 ‘왕오천축국전’에 쓰인 혜초의 오언시를 읽어주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눈물나는 시입니다.” 2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 앙박물관을 찾은 유홍준 교수가 제자들에게 ‘왕오천축국전’에 쓰인 혜초의 오언시를 읽어주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 장식 보검 손잡이 부분을 보세요. 터키석, 비취옥, 자수정 등이 박혀 있죠? 그리고 저 팔찌와 은잔, 유리잔과 병…. 모두 페르시아 수입품입니다. 아마 황남대총의 주인인 여성이 수입 명품을 선호했던 모양이죠.”

강연장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대형 스크린에 신라 유물 사진을 띄우고 당시 활발했던 해외 교류의 흔적을 소개하던 유홍준 명지대 교수(전 문화재청장)도 웃음을 지었다.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에서 ‘신라 고분미술 속의 서역 유물, 그리고 혜초 스님’을 주제로 열린 유 교수의 특강. 특강을 신청한 아이파크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 진주지점 문화센터 회원들, 특강 소식을 듣고 찾아온 제자와 시민 60여 명이 강의실을 채웠다. 동아일보와 국립중앙박물관, MBC가 공동 주최하는 ‘실크로드와 둔황-혜초와 함께하는 서역기행’을 기념하는 특별 강연이었다.

“5세기경에 페르시아와 교역할 정도로 다른 나라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개방적이었던 신라는 그 덕분에 문화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어요. 문화는 충격을 받았을 때 발달할 수 있으니까요.”

유 교수는 ‘왕오천축국전’ 이야기로 넘어갔다. 혜초가 중국으로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건너간 8세기는 신라 문화의 최전성기였다고 지적했다. “열여섯 살 때 중국 광저우 지역에서 밀교를 공부하던 금강지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됐고, 스님의 권유로 5개 천축을 돌아본 뒤 파미르 고원을 넘어 장안으로 돌아옵니다. 혜초는 훗날 금강지 스님이 자신의 6대 제자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글로벌한 인물이었죠.”

유 교수는 고향을 떠나 이름을 떨친 혜초를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에 비유했다. “당시 스님은 최고 지식인이었습니다. 유럽의 신학자인 셈이죠. 백남준이 한국에서 활동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세계사의 흐름에 선 혜초도 자랑스러운 인물입니다.”

강의를 마친 뒤 유 교수는 함께 온 제자들과 함께 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로 올라갔다. “와, 글씨가 딱 스님 글씨네.” 또박또박 써 내려간 왕오천축국전을 들여다보던 유 교수가 옆에 선 제자들에게 말했다. “글씨를 보면 사람을 안다고, 이 글씨를 쓴 사람은 평생 성질 한 번 안 부렸을 사람입니다. 글이 참 온순하지요.”

찬찬히 글을 읽어 내려가던 유 교수가 “아! 여기 봐요!”라고 외쳤다. 혜초가 쓴 글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를 원본에서 발견한 것이다. 혜초가 토화라국(토카리스탄)에서 호밀(胡蜜)국으로 가다 중국 사신을 만났을 때 지은 오언시다. ‘그대는 서쪽 이역이 멀다고 원망하고, 나는 동쪽 길이 멀다고 탄식하노라…평생 눈물 흘린 적 없는 나건만, 오늘만은 하염없이 천 갈래 눈물을 뿌리는구나.’

초등학생인 두 아들과 함께 온 정진미 씨(36)는 “이 전시 내용이 우리 문화의 한쪽 뿌리란 얘기를 듣고 보니 실크로드를 통해 오고간 문명의 흔적이 예사롭지 않고 혜초가 새삼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번 특별전에는 세계 최초로 공개 전시되는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해 중국 실크로드 지역의 유물 22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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