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의 특별 민방위 훈련…형식은 ‘특별’ 실제는 ‘건성’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5일 16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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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대대적인 민방위 특별 대피 훈련이 15일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적극적으로 훈련에 동참한 기관도 있었지만 형식적인 대피는 물론 아예 대피하지 않는 모습도 목격됐다. 운전자가 차량에서 내려 대피하도록 하는 등의 본격적인 훈련을 하는 것은 1999년 이후 처음이다.

●형식은 '특별', 실제는 '건성'

이날 오후 2시 훈련 공습경보가 발령되면서 보행자와 운전자, 건물 이용객이 지하 대피소로 대피하는 훈련이 시작됐다. '특별 훈련'인 만큼 김황식 국무총리는 박연수 소방방재청장의 보고를 받으며 서울 중구 남산 N타워에서 전체적인 훈련 상황을 점검했다.

하지만 같은 시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선릉역 사거리에서는 차량들이 각 차로에 정차할 뿐 한 줄로 도로변에 멈추고 인근 지하시설로 대피하는 운전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A 고에서는 일부 학급에서 대피하지 않고 그대로 수업을 진행했다. 담당 교사는 "자주 있는 수업이 아니라서 오늘 하지 못하면 다른 수업일정까지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수업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는 사이렌이 울리자 공무원들이 방독면을 휴대하고 지하 대피소로 이동했다. 하지만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다 보니 정체가 빚어져 제대로 대피하지 못했다. 훈련이 끝난 2시15분까지 지하층부터 지상 5층의 계단에 공무원들이 죽 늘어서 있어야 했다. 계단을 다 내려가기도 전에 훈련이 끝나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일부 부처에서는 문을 잠가둔 채 아예 대피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경남도청 일부 부서 사무실 문은 잠겨있었으나 밖으로 공무원들의 대화 소리가 새나오기도 했다.

서울 63빌딩에서도 대피훈련이 진행됐으나 고층 사무실 직원들은 오후 2시 이전에 미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있었다. 일부는 지하 대피소가 아닌 1층 로비에 머무는 등 실제 상황과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직원들은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많은 인원이 빠른 시간에 대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는 택시와 버스가 도로변에 정차했다. 일부 승객들은 민방위 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인근 건물 지하 대피소로 이동하는 등 적극적인 훈련 참여 보습을 보이기도 했다. 광주시 북구 전남대 도서관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공부에 방해된다'며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모두 지하 대피소로 이동했다.

●자발적 참여 미흡

이날 훈련은 시민들의 참여 의식이 부족하고, 훈련에 강제적으로 참여시키도록 하는 방안이 없어 형식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소방방재청은 민방위 훈련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훈련 통제에 따르지 않을 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이다. 강제 수단을 동원해야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겠지만 반발과 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실제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방재청은 또 학교, 고층건물, 주요 기간 시설, 정부부처 등 각 분야별 맞춤형 대피훈련을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각 시설 특성에 맞춘 훈련을 진행해 효율을 높이겠다는 것. 시민의식을 높이기 위해 민방위 훈련 홍보를 강화하고 책자와 동영상을 새로 만들어보급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방재청은 조만간 이들 방안을 포함한 민방위 훈련 강화 대책을 마련해 청와대에 보고할 방침이다.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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