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cm가 훌쩍 넘는 키. 안경 너머 장난기 배인 눈. 동그란 두상에 차분히 내려앉은 곱슬머리. 김병우 군(15·서울 휘경중 3)의 첫인상은 ‘서글서글’ 그 자체다. 말투도 그렇다. 하지만 그런 모습 뒤엔 불타는 승부욕이 감춰져있다. 2년 전, 그가 친구들과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을 할 때 김 군은 자기 안에서 끓어오르는 투지를 느꼈다.
“저보다 레벨이 5단계 높은 친구와 일대일 결투를 하게 됐어요. 제 캐릭터가 친구 캐릭터를 10대는 때려야 이길 수 있다면, 친구는 저를 3대만 쳐도 이기는 거예요. 레벨에 따라 게임 캐릭터의 체력이 결정되거든요. 게임 내내 밀리다가 결국 제가 졌어요. 얼마나 분하던지! 잠도 안 오더라고요.”
김 군은 곧바로 캐릭터를 정비했다. 다른 기능들은 포기하고 오로지 일대일 결투에 강한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체력 게이지를 높이는 방식으로 설정을 다시 했다. 무기와 액세서리 아이템도 결투에 유리한 것으로만 구입했다. 다음날 재결투를 신청한 김 군. 보기 좋게 친구를 이기고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는 “친구가 나보다 레벨이 높다는 점을 알았지만 내가 진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가 싫었다”고 했다.》 1학년 때만 해도 김 군은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 입학 후 첫 시험 성적은 평균 82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필요성을 특별히 느끼지 못한 탓인지 수업시간에 졸기도 많이 졸았다.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2학기 성적은 평균 77점. 전교 302명 중 106등이었다.
○ 온라인 게임에서 불타던 승부욕, 공부로 옮아가다
2학년이 되자 성적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입시에 2학년 내신 성적부터 반영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막연히 ‘열심히 하자’고 생각하던 그의 투지에 결정적으로 불을 지핀 건 함께 온라인 게임을 하던 친구였다. 1학년 때 비슷한 성적이었던 친구는 2학년 첫 시험에서 평균 90점이 넘는 점수를 받았다. 김 군의 점수는 평균 82점….
“깜짝 놀랐어요. 성적이 오른 비결이 뭐냐고 물어도 말을 안 해주더라고요. 갑자기 제가 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승부욕에 발동이 걸렸다. 수업태도부터 바꿨다. 선생님의 강의가 곧 시험문제라고 생각하니 졸음이 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엔 바로 전 시간에 배운 내용을 다시 훑어봤다. 점심시간엔 20분 동안 밥을 먹고 남은 시간은 학교 도서관에 가 교과서를 읽었다.
결과는?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성적으로 나타났다. 평균 88점, 전교 등수 49등. 1년 만에 전교등수가 약 50등 오른 것이다. 주요 교과 중에선 수학성적이 특히 뛰어올랐다. 1학년 때 전교 117등으로 마감했던 수학성적은 2학년 말 전교 54등이 됐다.
“수학시간엔 선생님이 칠판에다 문제를 쓴 뒤 저희들에게 풀어보라고 하시잖아요. 그때 얼른 문제를 풀어요. 선생님이 ‘문제의 답을 낸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시면 제가 가장 먼저 대답하고 싶어서요. 다른 친구들이 아무 말이 없을 때 답을 외치면 엄청 뿌듯해요. 선생님이 칭찬도 해주시니까 인정받는 듯해 기분도 좋고요. 칭찬 받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웃음).”
○ 친구들에게 문제풀이법을 설명하다 수학교사를 꿈꾸다!
주요과목 성적은 크게 올랐지만 전 과목 평균점수는 90점을 넘기기 어려웠다. 특히 미술, 음악 등 예체능 과목의 필기시험이 문제였다. 공부하기가 싫어 시험 전날 대충 훑어보기만 하니 음악과 미술 시험점수는 각각 전교 124등과 200등에 그쳤다.
3학년이 되자 고교 입시가 피부에 와 닿았다. 이전까진 잔소리로만 느껴졌던 “지금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비로소 머리에 맴돌았다. 김 군은 귀가하자마자 2시간씩 게임을 하던 버릇을 고쳤다. 그 시간을 복습으로 채웠다.
암기과목이 전체 평균점수를 깎아먹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말고사 한 달 전부터는 그날 배운 암기과목 내용을 틈틈이 익혔다. 교과서를 읽으며 맥락을 이해했을 뿐인데도 시험 전날이면 내용을 외우기가 훨씬 수월했다. 김 군의 3학년 1학기 성적은 전교 40등 초반 대를 유지하더니 2학기 중간고사 때는 드디어 평균 90점을 넘었다. 정확하게는 94점. 전교 21등이었다.
“성적이 올라 가장 기분 좋았던 일 중 하나는 반 친구들이 저한테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러 오는 것이었어요. 예전엔 제가 물어보는 입장이었는데 이젠 가르쳐주는 입장이 된 거예요. 성적 좋은 친구들도 저한테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러 오니까 ‘아, 나도 이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로 인정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했어요. 전교 5등하는 친구와 과학 문제의 정답을 두고 의견이 맞서다가 제가 맞는 풀이법을 제시했을 때 구경하던 친구들이 ‘오∼’라며 감탄한 적도 있어요. 그때의 짜릿함! 공부에 관심 없었을 땐 몰랐던 기분이죠.”
김 군은 수학교사가 되고 싶다. 어려운 수학문제를 들고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풀이법을 설명해주면서 갖게 된 꿈이다.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 난감해하던 부분을 친구들이 똑같이 고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김 군은 어느덧 친구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풀이해주는 기술을 익히게 됐다. 그러자 “너 정말 잘 가르쳐 준다”는 친구들의 칭찬이 돌아왔다. 처음부터 직접 풀이과정이나 정답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스스로 문제를 풀기 위한 발상을 떠올리고 풀이법도 생각해낼 수 있도록 돕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마침내 친구가 제 힘으로 답을 구해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기 짝이 없다고.
김 군은 “나중에 진짜 수학선생님이 되어서도 학생들에게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단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수학선생님이 꼭 되고 싶다”며 웃었다.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우리학교 공부스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중하위권에 머물다가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한 학생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연락처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