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찰칵! 사진 찍으니 인생이 환해졌어요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 고양 노인 사진동아리

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흰돌마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로 구성된 사진 동아리 ‘사진쟁이’의 전시회가 열렸다. 이날 현장에 설치된 임시 스튜디오에서 회원들이 직접 촬영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흰돌마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로 구성된 사진 동아리 ‘사진쟁이’의 전시회가 열렸다. 이날 현장에 설치된 임시 스튜디오에서 회원들이 직접 촬영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흰돌마을 주공아파트 4단지. 단지 내 놀이터 한편에 노란색 철골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다. 구조물 안쪽에는 ‘4단지 끝나지 않은 마지막 4막극’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구조물은 이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로 구성된 사진 동아리 ‘사진쟁이’의 스튜디오이자 전시장. 회원이나 동네 이웃들을 찍거나, 촬영한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 ‘출사’가 취미인 노인들

사진쟁이 회원은 약 20명. 모두 60대 이상의 할머니 할아버지다. 최고령인 강신수 할머니는 올해 84세다. 대부분 혼자 살고 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지만 사진을 찍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놀이터나 복지관에서 만나 얘기나 주고받던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도 아닌 ‘똑딱이 카메라’ 한 대가 이들의 생활을 바꿔놓았다. 흰돌마을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한 생활문화공동체사업 대상 지역으로 선정됐다. 사진쟁이는 이 사업을 통해 진행된 프로그램 중 하나다. 60대부터 80대까지의 노인을 대상으로 사진 촬영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회원들은 지금은 구하기 힘든 필름 카메라로 매달 두 차례씩 교육을 받고 출사를 다녔다.

카메라의 위력은 놀라웠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이기만 하면 사진을 소재로 얘기꽃을 피웠다. 정기 모임 외에도 자신이 다니는 노인대학이나 성당, 교회 행사에서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사진을 찍는 모습에 주변의 반응은 뜨거웠고 회원들의 자신감도 커졌다. 자연스럽게 아파트 전체의 분위기도 밝아졌다. 한경임 할머니(77)는 “맨 처음 찍은 사진은 서툴러서 까맣게 나왔는데 이제는 환하게 잘 찍을 수 있다”며 “마치 내 인생도 환해진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최고령인 강신수 할머니는 “위장병을 달고 살았는데 사진 찍으면서 다 나았다”며 “주변에서 멋쟁이 할머니라고 불러줄 때마다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마침 이날은 2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날. 그래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그동안 출사를 다니며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만든 콜라주 방식의 미술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올해 마지막 행사이지만 내년에도 사진쟁이 활동이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끝나지 않은’이라는 표현이 붙었다. 이곳에서 사업을 진행한 예술단체 ‘공공미술 프리즘’의 박미현 아트디렉터는 “형편이 어렵거나 혼자 사는 주민이 많은 임대아파트여서 분위기가 어두운 편이었다”며 “사진이 어르신뿐 아니라 아파트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 소외 지역에 문화예술 ‘바람’

흰돌마을에는 사진동아리 외에 비누, 양초 등을 만드는 공방교실과 일종의 벼룩시장인 ‘아트마켓’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모두 생활문화공동체사업을 통해서다. 이곳뿐 아니라 올해 전국적으로 20곳에서 비슷한 사업이 진행됐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 임대아파트 단지, 제주 서귀포시 월평마을, 경남 통영시 사량도 등 문화예술을 경험하기 힘든 저소득층 마을이나 농어촌지역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서민정 홍보국제협력팀장은 “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 들어가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효과가 컸다”며 “특히 도시지역에서 새롭게 마을공동체가 형성된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