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노믹스’ 물경영 시대]<2>일본의 워터세이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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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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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축구장 2개 크기 물탱크… 100년만의 대홍수에도 끄떡없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깝고, 태풍이나 홍수 등 재해의 빈도도 유사하다. 동아일보 지역경쟁력센터와 모니터그룹이 세계 20개 물 경쟁력 선도국가(W20·Water group of 20)의 재해 안전성을 평가한 결과 일본은 물 관련 재해 발생 위험이 4번째로 높았다. 하지만 경제규모를 고려한 재해 피해 규모는 중위권이었다. 선진적인 방재 역량이 피해를 크게 줄인 덕분이다.

지난달 말 일본 사이타마(埼玉) 현 가스카베(春日部) 시 변두리에 있는 수도권외곽방수로 관리사무소. 지상에 축구장과 조그마한 건물뿐인 이곳에 얼마 전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와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국토교통상(현 외상)이 들렀다. 영국과 프랑스, 대만 등 해외 언론사의 방문도 잦다.

이 건물의 지하 50m 아래로 내려가자 길이 177m, 폭 78m, 높이 18m 규모의 축구장 2개 정도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나타났다. 초대형 지하대피소와 같은 이 시설물은 홍수가 났을 때 지상의 물을 빼 가두는 거대한 지하 물탱크다. 이곳은 지름이 10m인 6.4km 길이의 터널로 이어진다. 탱크 수위가 10m를 넘으면 초대형 펌프 4대가 초당 200m³의 물을 에도(江戶) 강으로 퍼낸다. 에도 강엔 대홍수를 대비한 ‘슈퍼제방(高規格堤防)’이 건설돼 있다.

아라키 시게루(荒木茂) 수도권외곽방수로 관리소장은 “이 지하 방수로는 100년에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대형 홍수에 대비한 것”이라며 “완공 후 매년 5, 6회 정도씩 이곳에 물이 찬다”고 말했다.

초대형 지하방수로와 물탱크 일본 사이타마 현 지하 50m에 건설된 지름 10m의 지하방수로는 길이가 6.4km에 이른다. 이 방수로는 호우 시 인근 저지대의 물을 보관해 지상에서 홍수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다. 아래 사진은 방수로의 물이 모이는 초대형 물탱크에 물이 차 있는 모습. 축구장 2개 크기의 면적, 높이 18m로 건설된 이 탱크는 수위가 높아지면 물을 에도 강으로 내보낸다. 사진 제공 일본 국토교통성 간토지방정비국
초대형 지하방수로와 물탱크 일본 사이타마 현 지하 50m에 건설된 지름 10m의 지하방수로는 길이가 6.4km에 이른다. 이 방수로는 호우 시 인근 저지대의 물을 보관해 지상에서 홍수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다. 아래 사진은 방수로의 물이 모이는 초대형 물탱크에 물이 차 있는 모습. 축구장 2개 크기의 면적, 높이 18m로 건설된 이 탱크는 수위가 높아지면 물을 에도 강으로 내보낸다. 사진 제공 일본 국토교통성 간토지방정비국
○ 10년간 130조 원 치수(治水) 투자

수도권외곽방수로 시설을 설치한 이후 홍수 때마다 범람했던 나카(中) 강, 구라마쓰(倉松) 강 주변 저지대는 홍수 안전지대로 변모했다. 일본 정부는 방수로 건설을 위해 1993년부터 14년 동안 2300억 엔(약 3조15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한국은 방재예산 가운데 피해 복구비가 재해 예방비용보다 많지만 일본은 정반대다. 2005년의 경우 예방비용이 피해복구비의 4배에 이르기도 했다. 주요 하천에 대해 최대 200년 빈도의 홍수 발생까지 대비한 수해 대책을 세운다.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큰 홍수가 일어날 확률을 계산하고, 모든 시설이 최악의 상황을 견디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 “위험을 부풀려 토건업자들의 배만 불린다”거나 “투자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최근 10년 동안 매년 1조 엔(약 13조7000억 원) 안팎의 치수특별회계를 꾸준히 편성해왔다.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연간 7000억 엔(약 9조5000억 원) 정도로 줄긴 했지만, 이 항목은 유지되고 있다.

수해관리를 위한 국제센터(ICHARM)의 다케우치 구니요시(竹內邦良) 센터장은 “수해 대책은 갑자기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일본은 50년 이상 치수 대책을 축적해왔다”고 설명했다.

○ “후손에게 수해를 대물림하지 않겠다”

일본은 200년 빈도의 홍수에 대비해 제방 높이보다 폭이 30배 이상 되는 ‘슈퍼제방’을 건설하고 있다. 도시도 이 제방보다 높은 곳에 건설한다. 물그릇이 크기 때문에 집중호우를 견딜 수 있고, 홍수가 나더라도 도시로 물이 넘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도노 히로시(東野寬) 도쿄(東京) 도 건설국 하천계획과장은 “1959년 태풍이 도쿄 만을 휩쓸고 지나간 뒤 슈퍼제방의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1984년 슈퍼제방 건설에 착수했는데 아직 30% 정도밖에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수해를 예방하고 대응하도록 유도하는 소프트웨어에도 공을 들인다. 일본 정부가 제작하는 홍수위험지도(Hazard Map·수해 위험을 알리기 위해 침수예상 구역을 표시한 지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토교통성이 실시간으로 수집한 강수량과 하천 수위를 인터넷에 공지하고, 이를 통해 대피 시간을 1시간 정도 앞당기는 것이다.

홍수위험지도에 상습 침수구역으로 분류된 지역의 1층은 주거지를 조성하지 않는 대신 필로티(아파트 1층에 기둥만을 둬 건물을 떠받치는 구조)를 만들어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활용하다가 홍수 때는 범람한 물을 가두는 공간으로 쓴다. 일본 정부는 필로티가 있는 건물 거주 주민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준다.

○ “200년 이상을 내다 본 홍수 대비”

2005년 8월 초대형 허리케인이 미국 동남부를 강타하자 일본 정부는 관련 부처와 재해전문가, 재계인사 등을 망라한 임시 위원회를 만들었다. 일본 정부가 지진이 아닌 수해를 대상으로 이 같은 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위원회는 올해 3월 ‘200년에 한 번씩 발생하는 재해에 대비하는 기존 대책보다 더 강도 높은 수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건의했다. 과거 자료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1947년 도쿄의 스미다(隅田) 강, 도네(利根) 강을 범람시킨 태풍 ‘캐서린’이 다시 오면 재산피해액이 9000배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도쿄·사이타마·지바=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네덜란드… 제방에 센서 심어 물흐름 실시간 파악 ▼

네덜란드는 센서가 내장된 ‘스마트 제방’으로 물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수집, 분석하고 홍수 위험을 감지해 홍수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사진은 홍수 발생 시 스마트 제방이 붕괴되는 상황을 모의 실험하는 모습. 사진 제공 델타레스
네덜란드는 센서가 내장된 ‘스마트 제방’으로 물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수집, 분석하고 홍수 위험을 감지해 홍수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사진은 홍수 발생 시 스마트 제방이 붕괴되는 상황을 모의 실험하는 모습. 사진 제공 델타레스
지난달 말 네덜란드 서북쪽의 소도시 렐리스타트에 위치한 교통·공공·물관리부(RWS) 국가물관리센터. 네덜란드의 홍수 위험을 총괄 관리하는 이 센터에는 지도와 각종 그래프가 빼곡한 모니터가 늘어서 있었다. 한 직원이 모니터에 뜬 지도상의 특정 지점에 커서를 갖다대자 해당 지역의 물 흐름과 관련된 정보가 실시간으로 떴다. 제방에 내장된 센서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송하고 있었다.

코르넬리스 이스라엘 RWS 물관리 프로그램 매니저는 “기후변화로 홍수 위험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어 실시간 데이터 수집 및 분석이 중요해졌다”며 “홍수에 대한 선제적인 대비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 아래에 있는 네덜란드는 상시적으로 홍수 위험에 노출돼 있다. 1953년에는 홍수대참사로 1800여 명이 숨졌고, 1993년과 1995년에도 물 범람으로 수천 명이 대피했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홍수 위험을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2008년부터 RWS와 정보기술(IT) 회사인 IBM, 엔지니어링 회사인 델타레스 등 9개 기관과 기업이 참여하는 ‘홍수 통제 프로그램(Flood Control 2015)’을 준비했다. RWS는 먼저 정교한 센서를 제방에 설치하고, 이를 네트워크화해서 물 흐름을 측정한다. 측정 대상은 강과 운하, 댐, 저수지 등 총 2200km에 이르는 물길이다. 여기에 흐르는 물 용량은 연간 120조 L에 이른다.

브람 하버르스 IBM 물 관리 담당 IT 아키텍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며 “여기에는 IBM의 정보기술과 네덜란드의 물 관리 노하우가 접목됐다”고 말했다. 홍수 통제 프로그램은 2012년경 본격 가동되며, 시험 가동 결과 홍수 예측 정확도가 2배로 높아졌고, 정보 처리 속도도 2배로 빨라졌다.

렐리스타트=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한국 집중호우 급증… 맞춤형 대책 시급 ▼

환경부에 따르면 여름철 호우로 인한 재해 발생 빈도는 1940∼1970년대 연평균 5.3회였으나 1980년 이후에는 연평균 8.8회로 증가했다. 전체적인 강수일수는 줄고 있으나 집중호우 빈도가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1987∼1996년 시간당 50mm 이상의 비가 내린 횟수는 연평균 10.7회였으나 1997∼2006년에는 20.1회로 늘었다.

국가 차원의 수방대책도 중요하지만 지자체들이 한정된 예산으로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지역 상황에 맞게 선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선 하천 유역에 대한 홍수 위험도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국토해양부가 진행 중인 홍수 위험 지도 제작도 이런 필요성 때문이다. 주민이 많고 산업시설 등이 밀집한 지역은 큰 규모의 제방을 건설하고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대대적인 투자가 어려운 지역은 저지대 주민 이주나 홍수 발생 시 농경지의 저류지 활용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4일 동아일보 지역경쟁력센터 초청 좌담회에서 “기후변화로 지난해 대만처럼 하루에 1000mm의 비가 내릴 수 있는데 이런 가능성을 놓고 투자한다면 수십조 원이 들어갈 것”이라며 “투자 대비 효율성에 대한 연구와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워터 세이프티(Water Safety) ::

기후 변화와 기상 이변에 따른 집중호우와 홍수 등 수해, 수질 악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신체나 생명에 대한 위험과 국가적 부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역량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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