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칠레의 기적’으로 다시 기억된 매몰 광원 김창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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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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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적 소문 이젠 다 옛일 이름만은 제대로 불렸으면”


칠레 광원들의 구조 과정에서 다시 한번 국민들의 기억에 되살아난 구봉광산(충남 청양군) 붕괴사고의 주인공 김창선 씨(79·사진). 당시 16일 만에 생환한 그는 18일 “이제는 내 이름을 ‘양창선’이 아니라고 정정해달라고 하는 것도 지친다”고 말했다. 최근 또다시 몰려든 일부 신문과 방송이 자신의 이름을 여전히 ‘양창선’으로 잘못 표기했기 때문이다.

김 씨가 양 씨가 된 것은 군대의 착오 때문. 황해도 출신으로 1951년 1·4후퇴 때 월남한 그는 해병대에 입대한 후 양 씨가 됐다. 김 씨는 “입대 지원서류 취급자가 잘못 기재한 것 같다”며 고쳐달라고 요구했으나 ”사회에 나가면 바로 잡아질테니 걱정 말라“는 말에 그대로 넘기고 말았다. 하지만 제대 후에도 성은 바로 잡아지지 않았다. 아들 김동주 씨(47·은행원)는 “성을 바꾸려면 고향 사람 2명 이상이 증인을 서줘야 했지만 황해도는 북녘 땅”이라고 말했다.

1967년 8월 22일의 구봉광산 사고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지만 김 씨가 성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 갱도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그는 현장에 나와 있던 청와대 관계자에게 성이 바뀐 사연과 함께 성을 되찾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당시 현장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으로 청와대 관계자가 상주하고 있었다. 김 씨는 “구조된 후 성을 바꾸려니 재판 등의 여러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특명 덕분인지 2, 3년 만에 성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다른 신문들과 달리 그해 9월 7일자 1면에 ‘광부 김창선 씨 극적 생환’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이름을 미리 되찾아 줬다.

김 씨는 구조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오보와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렸다. 갱도 한편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 목숨을 이어갔지만 ‘오줌을 받아먹으면서 생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에게 국민들의 위로성금이 잇따르자 ‘여가수와 동거한다’, ‘넥타이를 하루에 몇 번씩 갈아매고 다닌다’, ‘광원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등의 보도와 소문이 난무했다. 사고 이후에도 1년여 동안 구봉광산에서 광원 생활을 계속했다는 김 씨는 “오보를 한 신문사를 찾아가 사과를 받기도 했다”며 “모두 옛일이 됐지만 이제 이름만은 제대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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