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뱀 살리려면 발가락끝 잘라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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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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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2급 ‘표범장지뱀’ 보호구역 태안 서식지 가보니

《최근 ‘표범장지뱀’이 어떤 뱀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표범장지뱀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다는 보도로 관심이 높아진 때문이다. 표범장지뱀은 뱀이 아니라 다리가 달린 도마뱀이다. 주로 한국 중국 몽골의 해안가 모래언덕에 살고 있는 이 도마뱀은 환경파괴 등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기자는 18일 충남 태안군 고남면 장곡리 표범장지뱀 보호구역을 찾았다. 2008년부터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이곳은 1만6000m² 규모로 길게 뻗은 모래언덕과 해수욕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국내 표범장지뱀 주요 서식지를 분기별로 조사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립공원연구원 송재영 조사연구팀장(38) 등 연구원과 동행했다.》


○ 2007년부터 생태조사 데이터 분석

이날 기자는 표범장지뱀을 잡기 위해 갯벌 근처 바닷가 모래언덕 위 풀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송 팀장은 2007년부터 이 일대 표범장지뱀 생태를 조사해 데이터를 축적했다. 이를 토대로 정부에 건의해 이곳을 특별보호구로 만든 것이었다.

표범장지뱀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워낙 빠른 데다 주변과 색을 맞추는 보호색을 지녔기 때문이다. 모래 색깔과 비슷해 발견하는 순간 금세 사라졌다.

기자가 계속 헛손질을 하자 송 팀장이 나섰다. 손을 밥공기 모양으로 만들어 그대로 덮었다. 표범장지뱀은 꼬리를 잡히면 끊고 도망간다. 꼬리는 마치 사람의 발가락처럼 몸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꼬리가 없어지면 균형감이 떨어져 뱀 새 너구리 등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높다.

포획장소 휴대용GPS로 체크 후,발가락 잘린 위치 - 수 비교 분석

손가락으로 표범장지뱀 몸통을 잡고 전자자를 댔다. 몸길이 7cm, 꼬리길이 6cm였다. 등에는 표범무늬 모양의 얼룩반점 15개가 있었다. 발톱은 끝이 날카롭다. 표범장지뱀은 1년 중 6, 7월에 한 번에 3, 4개의 알을 산란한다. 8월에 부화하기 때문에 이날 새끼 표범장지뱀도 볼 수 있었다.

○ 왜 표범장지뱀의 발가락을 자를까?


연구팀은 표범장지뱀의 발가락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발톱 끝은 날카로웠다. 송 팀장은 “발가락 끝에 잘린 자국이 없는 걸보니 처음 만난 친구”라고 말했다. 보통 표범장지뱀을 잡으면 발가락 끝 2mm를 살짝 잘라낸다. “왜 발가락 끝을 자르냐”고 묻자 송 팀장은 표범장지뱀을 잡은 곳에 하얀 깃발을 세웠다. 이후 휴대용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꺼냈다. ‘북위 36도, 경도 126도’ 등 표범장지뱀을 잡은 장소의 좌표가 확인됐다.

“표범장지뱀을 잡은 후 발가락을 자릅니다. 예를 들어 왼발 네 번째 발가락을 자르면 4번 장지뱀이 되는 거죠. 잡힌 장소의 위치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가 석 달 후 다시 이 일대를 조사합니다. 표범장지뱀을 잡으면 발가락을 확인해요. 우연히 4번이 또 잡힐 경우 또다시 위치를 기록합니다. 이렇게 위치점이 계속 찍히다 보면 표범장지뱀의 이동거리, 활동반경, 나아가 행동양식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32번째 잡힌 표범장지뱀은 오른발 3번째 발가락 끝과 왼발 2번째 발가락 끝을 자르는 식으로 네 발을 이용해 총 9999번까지 번호를 부여할 수 있다. 지리정보시스템(GIS)으로 세력권을 분석해 보호지역을 설정한다는 설명이다. 2년간의 조사에서 번호를 부여한 표범장지뱀은 160여 마리. 최대 네 번 잡힌 표범장지뱀은 정이 들고 친구 같단다. 잘라낸 발가락은 연구실로 가져간다. 식물에 나이테가 생기듯이 표범장지뱀의 뼈도 부피가 커지면서 나이테 같은 것이 생긴다. 잘린 발가락을 염색하면 지골을 통해 나이를 알 수 있다. 나이가 확인되면 일대의 표범장지뱀의 연령구조나 출생률, 사망률, 생존율을 파악할 수 있다.

이동거리 - 활동반경 알아내,배 속 먹이로 먹이사슬 파악도

송 팀장은 표범장지뱀의 길이를 잰 후 몸을 뒤집어 배 아래쪽을 눌렀다. 면도날로 살짝 상처를 낸 것 같은 부분에서 생식기 2개가 튀어나왔다. 수컷이었다. 암수를 확인하는 이유는 성별에 따라 활동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병에 넣은 후 미니저울로 몸무게를 달았다. 표범장지뱀은 모래밭에서 구멍을 판 후 머리만 내밀고 주변을 경계하다가 지나가는 거미, 메뚜기 등을 잡아먹는다. 위에 든 먹이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생리식염수를 입에 넣어 토하게 하거나 배를 펌프질해 내용물을 뽑아낸다. 연구팀은 하루에 100마리 정도 관찰하고 30∼40마리를 채집한다. 조사 후에는 바로 놓아준다.

‘도마뱀 한 마리를 뭘 이렇게 꼼꼼히 조사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표범장지뱀은 먹이사슬에서 소형 곤충을 먹고 대형동물의 먹이가 되는 중간자 역할을 한다. 이런 중간자가 사라지면 생태계 균형이 무너지고 결국 인간도 피해를 보게 된다. 송 팀장은 “멸종위기종을 복원하기 위한 연구가 부족했다”며 “복원을 위해 장기간 연구해 정확한 생태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안=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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