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훼손 증거인멸 ‘배경’ 못밝힌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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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인 사찰’ 수사 일단락
상명하복 감찰 조직서 ‘실무자 단독결정’ 의문 남아
정두언-남경필 “부실수사” 비판…민주 등 야권 “특검도입” 주장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수사가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3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1개월여 만에 일단락됐다. 지난달 5일 총리실의 자체 조사 결과를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일단 불법사찰 행위가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검찰이 11일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에 따르면 전 KB한마음 대표 김종익 씨를 사찰한 행위에는 강요, 방실수색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2008년 9, 10월경 국민은행 관계자 등을 통해 김 씨를 협박해 김 씨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고 회사 지분을 이전하도록 했고(강요), KB한마음 사무실에 들어가 책상서랍을 마음대로 열어보고 급여대장 등 서류를 제출받은 것(방실수색)은 불법행위라는 것.

남경필 한나라당 국회의원 부인이 연루된 고소사건 처리과정을 탐문한 행위에 대해선 이 전 지원관과 김충곤 전 점검1팀장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고소사건 담당 경찰관에게서 수사서류 등을 넘겨받은 행위 등은 월권행위라는 취지다. 검찰은 실제 탐문행위를 한 파견경찰관 김모 경위도 곧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훼손되고 관련자들이 혐의 사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장벽에 막혀 이번 수사는 이른바 ‘윗선’ 의혹을 전혀 규명하지 못했다. ‘윗선’ 의혹을 사온 이영호 전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은 물론이고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한결같이 “불법사찰 결과를 보고한 적도, 지시한 적도 없다”고 진술했고 e메일도 샅샅이 뒤졌으나 물증을 찾아내지 못했다.

또 이 전 지원관은 검찰 조사에서 “직속상관이었던 김영철 전 국무총리실 사무차장에게 사찰 결과를 선별해 보고했다”고 진술했는데, 김 차장은 2008년 10월 작고해 확인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상명하복 원칙이 철저한 감찰조직의 속성상 실무 책임자만의 판단과 결정만으로 대통령 비방과 관련한 사안을 불법사찰할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압수한 컴퓨터 하드디스크 7개가 파괴된 경위도 수수께끼다. 하드디스크 7개 중 4개는 자성(磁性)이 강한 물질을 하드디스크에 가까이 대는 수법을 사용해 내부 자료를 완전히 지웠고, 3개는 삭제 전문 프로그램을 활용해 자료를 지우는 등 외부 전문가가 개입해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 이는 역설적으로 이 하드디스크에 들어 있는 자료가 공개되면 ‘큰일’이 날 만한 민감한 내용이 많다는 것이어서 증거인멸 배경을 둘러싼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전 지원관 등 3명에 대한 1심 공판을 재정합의부인 형사합의35부에 배당했다. 강요죄 등의 사건은 통상 단독판사가 맡지만,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 단독판사 3명으로 구성된 재정합의부에서 심리하기로 한 것이다.

한편 불법사찰을 받은 정치인으로 거론된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과 남경필 의원은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 불만을 나타냈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결국 컴퓨터 하드디스크 훼손 때문에 사실을 밝히기 어렵다는 것인데 누가 훼손했는지 진술을 통해서라도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남 의원도 “이런 정도의 흐지부지한 수사로 국민이 과연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부실 수사”라고 비판하며 국회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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