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씨 말리는 큰입배스 위장 작전으로 씨 말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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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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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스 인공산란장 만들어 알 낳으면 제거… 팔당호 1만3000개 소탕

“물고기가 도롱뇽이나 가재, 쥐까지 잡아먹는다?”

‘생태계의 폭군’으로 불리는 외래종 민물고기 ‘큰입배스’(배스)에게는 가능한 얘기다. 전국 하천, 저수지에 퍼져 있는 배스는 자신의 절반 크기만 한 먹이도 한입에 삼켜버린다. 1973년 식용으로 국내에 수입된 배스는 전국 하천에 퍼지면서 토종 물고기의 씨를 마르게 해 황소개구리를 능가하는 ‘생태교란종’으로 꼽히고 있다. 환경전문가들은 “먹이피라미드에서 최종 소비자는 5% 내에 들어가야 안정적인데 배스는 기하급수로 번식해 50%를 넘기도 한다”고 경고했다. 배스 등 외래종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연 1조 원이 넘는다.

○ 작전명 “배스를 속여라”

“한 종류의 물고기가 많아진다고 환경에 무슨 문제가 생기나”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다. 배스가 지역 내 각종 물고기를 다 잡아먹으면 생태계의 먹이피라미드가 파괴된다. 생물 다양성이 줄어들다 보니 작은 물고기들이 사라져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지 못하고 녹조 현상이 생긴다. 하천의 자정 능력이 떨어져 오염물질이 정화되지 못한다. 한강유역환경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수도권 식수원인 팔당호 내 배스를 잡기 위해 시식회, 산란기 집중포획, 수매사업 등을 벌여 왔다. 하지만 배스는 그물로는 잘 잡히지 않는다. 낚시로 하나씩 잡다 보니 퇴치하는 데 한계가 있다.

최근 획기적인 방안을 도입됐다. ‘배스 속이기’ 작전이 5월부터 시작된 것. 배스 암컷은 산란기에 모래와 자갈 등 몸을 숨길 곳을 찾는다. 적절한 장소를 발견하면 수컷이 웅덩이를 파고 그 안에 암컷이 산란한다. 이후 수컷은 치어(稚魚)가 되기 전까지 알을 지킨다. 이런 습성을 파악한 한강유역환경청은 5월 11일 팔당호와 연결된 경안천 하류에 배스 ‘인공산란장’을 설치했다. 플라스틱 틀 바닥에 자갈을 까는 등 배스가 좋아하는 ‘최적의 산란 환경’을 만들어 배스를 유인했다. 암컷이 인공산란장 위에 알을 낳으면 부표가 떠오르게 했다.

이후 배스가 알을 낳으면 인공산란장을 꺼내 자갈에 붙어 있는 알을 제거하고 다시 설치하는 방식으로 44일간 수정란 1만3000여 개, 치어 1500여 마리를 제거했다. 한강유역환경청 자연환경과 김덕배 주무관은 “배스 수정란 부화율이 90∼95%임을 감안할 때 최소 1만3200마리를 제거한 효과”라며 “원천 번식 차단으로 토종어종 보호 등 생태계 건강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밝혔다.

○ 배스 라이벌 ‘토종 강준치’가 골치?

하지만 수년간 외래종 배스가 각종 방법으로 제거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됐다. 배스의 라이벌인 강준치가 너무 많이 번식해 팔당호 생태계를 파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 국립환경과학원 변명섭 연구사는 “배스보다는 대형 토종 육식어종인 강준치가 더 위험할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사람이 자연에 무작정 개입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스럽다. 장기적으로 생태계를 관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근 어부들 역시 “강준치가 너무 늘어나 붕어 새끼들을 다 잡아먹는다”며 불만이 많다.

생태전문가들에 따르면 실제 한강, 금강에 주로 살던 강준치가 1980년대 후반 낙동강에 이식된 후 강준치는 마치 배스처럼 낙동강 내 먹이피라미드를 교란시켰다. 한강물환경연구소가 조사한 팔당호 어종 개체수비율(2008년 기준)에 따르면 강준치는 물고기 100마리당 3.7마리, 배스는 100마리당 3.2마리였다. 동아일보가 팔당호 등에서 어종을 사들이는 양평군의 수매 명세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배스는 12t 수매됐지만 강준치는 40t이 수매됐다. 양평군 관계자는 “강준치가 많다 보니 그만큼 많이 잡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번식 원천차단으로 큰 효과,배스 줄어들자 강준치 급증-생태계 파괴 가능성은 적어

강준치는 팔당호 내에서 호수의 절대강자 자리를 놓고 배스와 경쟁해 왔다. 둘은 몸집과 힘도 막상막하. 배스는 몸의 길이가 60cm에 무게는 3∼4kg. 강준치는 몸의 길이가 1m에 무게는 2kg 정도. 배스가 바닥에 매복하길 것을 좋아한다면 강준치는 ‘조폭’처럼 떼를 지어 다니는 집단행동을 좋아한다.

이들은 서로의 새끼를 잡아먹으며 상대방의 번식을 억제해 왔다. 배스가 사라지면 강준치 새끼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되는 것. 하지만 토종 강준치가 팔당호 생태계를 파괴할 가능성은 적다는 지적이다. 양현 생물다양성연구소 소장은 “강준치가 일시적으로 증가할 수 있지만 결국 토종이기 때문에 생태계 먹이피라미드 안에서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 이완옥 연구원은 “외래종도 오래 살다 보면 그 나라 생태계에 적응하는 사례가 외국에서 발견되는 만큼 우리나라의 외래종 번식, 토종과의 관계, 이식 등을 폭넓게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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