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1시간前, 네번째 공문이 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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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 하루새 성취도평가 관련 상반된 공문
일선 학교 “무단결석-기타결석 어쩌란 건지” 혼란

전국 시험거부 학생 433명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생을 대상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실시된 13일 오전 2시. 서울시교육청의 평가 담당 직원들은 시내 958개 초중고교에 보낼 네 번째 공문 작성에 매달리고 있었다. 전날 오후 3시 발송한 ‘학업성취도평가 시행을 위한 정상적 교육과정 운영 안내’ 공문에 대한 ‘후속 조치’였다. 시차가 다른 세계 각지의 공관에 전문(電文)을 보내는 외교통상부 같은 부처에서야 흔한 일이지만 시교육청에서는 비상이 아니면 드문 일이었다.

전날 오후에 나온 공문이 발단이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12일 오후 3시 “등교 이후 시험을 치르지 않겠다는 학생을 위해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하라. 학부모의 교육철학에 따라 결석할 경우 ‘무단결석’이 아닌 ‘기타결석’으로 처리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일선 학교에 내려보냈다.

곽 교육감의 ‘기타결석’ 공문이 발송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가 움직였다. 서울지부는 그 직후 일선 학교 전교조 지회에 보내는 ‘긴급 업무연락’을 통해 “학교장에게 공문에 근거해 대체학습을 요구하고 시험 보기 전에 학생들에게 응시 여부를 확인하라”고 알렸다.

시교육청은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오후 10시 ‘대체 프로그램은 초중등교육법 위반’이라는 공문을 교육과학기술부 공문과 함께 보냈지만 그래도 불안했던지 다시 긴급 공문을 준비한 것이다. 13일 오전 2시가 돼서야 일선 학교로 보낼 긴급 공문이 완성됐다.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하라는 것이 시험 선택권을 부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응시 거부의 선동이나 독려로 해석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12일 오전 공문까지 치면 네 번째 공문이었다. 공문은 평가 당일 오전 8시 곽 교육감의 결재를 거쳐 일선 학교에 전달됐다.

일선 학교는 12일 오후부터 나온 3건의 공문을 평가일 오전에서야 받아본 뒤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시내의 한 중학교 교장은 “교과부는 시험을 거부한 학생을 무단결석 처리하라고 하고, 교육청은 기타결석 처리하라고 하니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하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북지역 학교들도 상반된 공문으로 혼란을 빚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시험 전날 각 학교에 e메일을 보내 “학생에게 응시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전북도교육청은 같은 날 교과부에서 보낸 공문도 그대로 전달했다. 전주시내 한 중학교 교감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대체학습 프로그램 운영과 결석처리 방침을 놓고 마지막까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시험을 거부한 학생은 전국에서 체험학습 참가 87명, 등교 후 시험 미응시 346명 등 433명으로 집계됐다.

교육계에서는 학업성취도평가를 둘러싼 혼선이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불명확한 태도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학업성취도평가에 반대하는 진보 진영의 요구와 교과부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 책임 사이에서 진보 교육감이 무게중심을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작 시험을 거부한 학생은 극소수인데 교육감과 정부가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대 교원단체인 교원단체총연합회장 출신인 한나라당 이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번 사태는 교과부의 대국민 설득 노력 부족, 일부 시도교육감의 법률정신 무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갈등 조정 실패가 빚은 합작품”이라고 비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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