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0주년]할리우드 6·25영화 91편 반공 반전 로맨스 영웅담… ‘시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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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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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집가 이현표씨 소장 포스터로 살펴본 ‘영화 테마’

애국심이 주요 소재
미군이 인민-중공군 격퇴…승전 영화가 70편 차지

영웅의 삶 영화화
美 UDT 그린 ‘수중전사’…미국판 ‘한주호 준위’ 묘사

반전 정서 반영도
전투에 염증느낀 병사 등장…우회적으로 베트남戰 비판


‘도곡리 다리들(TheBridges at Toko-Ri·1954년)’. 마크 롭슨 감독, 그레이스 켈리 주연.
‘도곡리 다리들(TheBridges at Toko-Ri·1954년)’. 마크 롭슨 감독, 그레이스 켈리 주연.
1950년 이후 미국 할리우드에서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극영화가 모두 91편이 제작됐다. 공산군의 남침을 저지했으나 휴전으로 끝나 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6·25이지만 당시 미국인들의 관심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직원인 이현표 씨(60·전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사진)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 6·25전쟁 배경 영화는 전쟁 발발 뒤부터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까지 20편, 휴전 뒤 1959년까지 42편이 제작됐다. 이후는 18편(1960년대), 5편(1970년대), 2편(1980년대), 4편(1990년대)으로 줄었다. 이 씨는 “전체의 3분의 2가량인 62편이 1950년대에 제작됐다”며 “1950년대 당시 미국인들이 6·25전쟁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옥(Hell In Korea·1956년)’. 줄리언 에이미스 감독.
‘한국의 지옥(Hell In Korea·1956년)’. 줄리언 에이미스 감독.
이 씨는 2005년부터 6·25전쟁 배경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를 수집하고 영화를 통해 6·25전쟁이 미국인에게 어떻게 인식됐는지 조사해왔다. 이 씨는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아 그동안 수집한 포스터를 공개했다. 6·25전쟁 배경 첫 영화는 ‘한국 정찰대(Korea Patrol·1951년)’, 마지막 영화는 ‘세가지 소망(Three Wishes·1995년)’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전쟁 그 자체보다는 트루먼 대통령, 맥아더 장군 등의 일대기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예가 많았다.

○ 미군 영웅, 로맨스 등 소재 다양

‘더 랙(The Rack·1956년)’. 아널드 레이븐 감독, 폴 뉴먼 주연.
‘더 랙(The Rack·1956년)’. 아널드 레이븐 감독, 폴 뉴먼 주연.
이 씨에 따르면 6·25 배경 영화 중에는 애국심이 넘치는 미군 영웅이 인민군, 중공군을 무찌르는 내용의 영화가 70여 편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국군은 용감하게 묘사되지만 인민군은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게 표현된다. 영화들은 ‘6·25는 공산주의를 저지하기 위한 자유주의의 반격’이라는 정통적인 인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앤드루 마턴 감독의 ‘수중전사(Underwater Warrior·1958년)’는 미 해군 수중파괴대(UDT)의 전설 프랜시스 페인의 삶을 영화화했다. 나이도 많고 처음에는 수영도 하지 못했던 미 해군 UDT 대원 포레스트가 한국에 파병돼 난관을 뚫고 폭발물을 설치해 적의 기뢰를 제거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미국판 한주호 준위’인 셈이다.

‘수중전사(Underwater Warrior·1958년)’.앤드루 마턴 감독.
‘수중전사(Underwater Warrior·1958년)’.앤드루 마턴 감독.
매카시즘(1950∼1954년·미국을 휩쓴 광적인 반공산주의 열풍)이 그대로 담긴 영화도 있다. 내 ‘아들 존(My Son John·1952)’은 두 남동생이 6·25에 참전한 공무원 존이 자신이 공산주의자였음을 고백하는 내용을 담았다. 소재도 전투뿐 아니라 형제애, 애국, 배신, 세뇌, 비밀임무 등 다양하다. 전체 91편 중 31편은 미군 장교와 간호사의 사랑 등 로맨스가 등장한다.

○ 반전 정서 반영하기도

‘배틀 플레임(Battle Flame·1959년)’.R G 스프링스틴 감독.
‘배틀 플레임(Battle Flame·1959년)’.R G 스프링스틴 감독.
수는 적지만 전쟁 속 인간성 말살에 대한 회의가 담긴 영화도 있다. ‘철모(Steel Helmet·1951년)’에는 전투의 잔인함에 회의하고 살인을 비난하는 병사가 등장한다. 소규모 영화사가 제작하고 B급영화 감독 새뮤얼 풀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풀러 감독은 이 영화를 제작한 뒤 미 정부의 요시찰 인물 명단에 올랐다고 한다.

동명 CBS TV시리즈로 더 유명한 원작 영화 ‘매시(Mash·1970년)’에도 은근한 반전 정서가 담겨있다. 350만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서 8160만 달러를 거둬들이며 흥행에 성공한 이 영화는 ‘못 말리는’ 군의관 세 명과 엄격한 간호장교 사이의 좌충우돌을 그렸다. 코미디의 배경으로 6·25를 선택해 우회적으로 베트남전을 비하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이언 에인절(Iron Angel·1964년)’. 켄케네디 감독.
‘아이언 에인절(Iron Angel·1964년)’. 켄케네디 감독.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배틀 서커스(Battle Circus·1953년)’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으로 영화배우였던 안필립 씨(1905∼1978)가 출연했다. 안 씨는 6편의 6·25 배경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 6·25와 함께 환갑 맞는 전쟁둥이

이 씨는 1950년 10월 1일 태어난 ‘전쟁둥이’다. 6월 25일 당시 서울에 살다가 한강철교가 끊어져 피란을 하지 못한 이 씨 모친은 임신 7개월의 몸으로 그해 7월 초 한강을 건넜다고 한다.

‘맥아더(MacARTHUR·1977년)’. 조지프 서전트 감독, 그레고리 펙 주연.
‘맥아더(MacARTHUR·1977년)’. 조지프 서전트 감독, 그레고리 펙 주연.
이 씨는 주미한국대사관 홍보참사관으로 일하던 2005년 워싱턴의 벼룩시장에서 6·25 영화 포스터를 모아 갖고 있던 가게주인을 만났다. 주인을 설득해 포스터 35개를 3000달러에 산 뒤 이 씨는 쉬는 날마다 고(古)물품 시장을 뒤져 30점을 더 사 모았다. 처음에는 아내에게 비밀로 해 아내는 “나도 모르게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 미국 은행이 사기를 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씨는 “6·25 60주년을 맞는 올해 나도 환갑을 맞는다”며 “최근 국방일보에 ‘할리우드가 본 6·25 전쟁’시리즈를 연재하며 미국 대중문화 속 6·25전쟁에 대한 시각을 알리고 있어 포스터 수집이 의미 있는 일이 됐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앤드루 마턴 감독 1954년 작품 ‘전쟁포로’
레이건 前대통령 출연… 北 포로수용소 잔학상 그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주연한 6·25전쟁 배경 영화 ‘전쟁포로’ 포스터.포스터 속의 오른쪽 끝 인물이 레이건 전 대통령. 사진 제공 이현표 씨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주연한 6·25전쟁 배경 영화 ‘전쟁포로’ 포스터.포스터 속의 오른쪽 끝 인물이 레이건 전 대통령. 사진 제공 이현표 씨
이 씨가 수집한 포스터 중에는 할리우드 영화배우로 활약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주연한 영화의 포스터도 있다. 앤드루 마턴 감독의 ‘전쟁포로(Prisoner of War·1954년)’다.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 북한 포로수용소의 세뇌, 고문 등 잔학상을 소재로 한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다.

육군 정보장교인 웹 슬론 대위(로널드 레이건)가 상병으로 위장해 소련군 대령의 실질적인 감독하에 있는 북한 포로수용소에 잠입한 뒤 일부 포로들과 함께 무사히 귀국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레이건 대통령은 생전에 이 영화에 자신이 출연했다는 것이 거론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수용소에 잠입한 슬론 대위가 한 미군 상병을 구하기 위해 소련 군 장교 앞에서 ‘위장 전향’을 하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이 씨는 “아무리 ‘위장전향’이고 영화일 뿐이라지만 1980년대 공화당 대통령으로 ‘강한 미국’을 주창하며 군사력이 뒷받침하는 강경한 대외정책을 펴온 대통령이 공산주의를 칭찬하는 모습이 담긴 영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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