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0주년]‘화포 12문의 전설’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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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전차 30대 - 포 180문에 맞서 3일간 남하 저지
학생 포탄 나르고 女工은 주먹밥 지어… 오늘 재현행사

“기러기, 여기는 갈매기! CG 916 985 지점에 이동 중인 적 보병 1개 대대. 신속히 사격 바람.” “두두두두…쾅 쾅!”

24일 오전 강원 춘천시 동면 가래울에서 귀를 찢는 듯한 총소리와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양강 건너편에서 북한군이 함성과 함께 도강을 시작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국군의 공격이 시작된 것. 붉은 깃발을 높이 들고 개미떼처럼 달려드는 북한군을 향해 국군의 총과 포가 불을 뿜었다. 강 중간에 포탄이 떨어지면서 곳곳에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북한군 병사들은 하나둘 쓰러져 갔다.

포성이 잠시 멈춘 사이 학생들이 전투 현장에 나타났다. 춘천사범학교에 보관 중인 포탄을 운반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탄약이 바닥난 장병들을 위해 리어카와 지게에 포탄을 싣고 찾아온 것이다. 잠시 뒤 간신히 강을 건넌 북한군이 수풀을 헤치고 상륙을 시도하자 다시 총알이 빗발쳤다. 적이 접근하자 국군은 진지 뒤편으로 물러나면서도 사격을 계속했다. 쌓여만 가는 북한군 시신. 결국 도강한 북한군은 한 명도 남김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육군 제2군단이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춘천대첩 재현행사의 최종 리허설은 실전을 방불케 했다. 북한군과 국군 복장을 한 장병 400여 명이 공포탄을 쏘며 전투장면을 완벽히 재현했다.

춘천대첩은 6·25전쟁 초기 춘천을 3일간이나 지켜낸 한국군 최초의 승리. 아군의 한강 방어와 미군 증원을 위한 시간을 벌게 해줬다.

당시 북한군은 2군단이 춘천을 공격했다. 3만8000여 명의 병력과 화포 180문으로 무장했다. 또 이 지역의 국군은 한 대도 보유하지 못했던 전차를 30대나 갖고 있었다. 반면 춘천을 지키던 육군 6사단은 9000여 명의 병력과 화포 12문뿐이었다. 이런 전투력 열세 속에서도 국군은 적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춘천대첩에는 시민들의 역할도 컸다. 춘천농고 학도병과 공장 여공들이 전장으로 탄약과 주먹밥을 날랐다.

육군 6사단 7연대 소속으로 춘천대첩에 참전했던 안원흥 씨(80·춘천시 교동)는 “당시 많은 전우를 잃었을 정도로 매우 치열하고 참혹한 전투였다”며 “6·25전쟁은 두 번 다시 되풀이돼선 안 될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후손들이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육군 2군단은 조국을 수호한 선배 전우들의 호국정신과 6·25전쟁을 상기하고 춘천대첩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기 위해 이 행사를 마련했다. 25일 열리는 본행사에는 6·25전쟁 참전용사 20여 명이 초청돼 이를 참관할 예정이다. 또 2군단 연병장에서 열리는 6·25전쟁 기념행사에서는 열병과 헬기 기념비행, 고공강하, 특공무술 시범, 주먹밥 시식 체험 등이 준비돼 있다.

이날 리허설을 참관한 오정석 2군단장은 “이번 춘천대첩 재현행사를 통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고귀한 호국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며 “다시는 이 땅에 과거와 같은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전 장병이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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