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 시대]<하>뜨거운 감자, 무상급식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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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초등교부터’… 단계적으로 늘려갈 듯

초중고 전면 시행땐 서울만 年6500억 필요
“지자체와 예산분담 협의” 與단체장과 벌써 신경전

2009년 전국 유일의 진보 성향 교육감이었던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외로웠다. 처음으로 무상급식을 공론화하면서 전면 시행을 추진했지만 한나라당이 장악한 경기도의회의 예산안 심의·의결에서 번번이 가로막혔던 것이다. 교육 현안을 두고 대립각을 세웠던 김문수 도지사에게 도움을 바랄 수도 없었고 다른 시도교육감의 ‘지원사격’도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무상급식을 전면에 내세운 진보 성향 교육감이 전국에서 6명이나 당선됐다. 경기도의회는 도의원 과반수가 무상급식에 긍정적인 민주당 소속이다. 재선에 성공한 김 교육감으로서는 날개를 단 셈이다.

○ 지자체와 발맞춰야 무상급식 가능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던 무상급식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잣대였다.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와 야당은 ‘무상급식 전면 시행’, 보수 성향 교육감 후보와 여당은 ‘저소득층 중심 무상급식’으로 나뉘었다.

무상급식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 이유는 막대한 예산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는 문제 때문이었다. 진보 진영은 “다른 예산을 줄여서라도 차별 없이 급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보수 진영은 “부자 자녀에게까지 공짜 급식을 줘야 하느냐”고 응수했다.

무상급식은 교육청 예산만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1년 예산은 약 6조3000억 원. 이 중 교사 월급, 학교 유지비 등 경직성 경비를 빼면 활용 가능한 예산은 2조 원 남짓이다. 현재 시교육청이 저소득층 무상급식에 사용하는 예산은 560여억 원이다. 이 돈으로 초중고교 학생 8.6%가 지원을 받고 있다. 서울지역 초중고교 무상급식을 하려면 약 6500억 원이 필요하다. 시교육청이 단독으로 추진하려면 활용 가능한 예산의 30%를 급식 한 분야에 써야 하는 셈이다.

진보 성향 교육감 당선자들이 모두 “지자체와 예산 분담 방안을 협력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보 성향 교육감이 나온 6개 지역 중에서 광주, 강원, 전북, 전남은 민주당 소속 시도지사가 당선돼 협력이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서울, 경기는 시도지사와 교육감의 성향이 달라 무상급식을 둘러싼 갈등이 벌써부터 일어나고 있다.

○ 벌써부터 시도지사와 예산안 신경전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4일 동아일보의 인터뷰에서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무상급식에만 돈을 쓸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급식은 교육청에서 할 일”이라며 무상급식에 예산을 지원할 뜻이 없다고 못 박았다.

두 사람이 거듭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6·2지방선거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우선 서울과 경기는 민주당이 시도의회를 장악해 여소야대가 됐다. 서울시의 경우 민주당 소속이 106명 중 79명(74.5%)을 차지했다. 경기도도 도의원 124명 중 76명(61.3%)이 민주당 소속이다. 예산안은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의 찬성이면 통과되기 때문에 무난하게 무상급식 예산안이 통과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지방의회 결정에 이의가 있을 시 재의요구권을 발동할 수 있다. 그러나 재의 요구된 안건은 시도의회에서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되면 곧바로 시행된다. 서울시의회는 민주당 단독으로 3분의 2가 넘고 경기도의회도 한나라당을 제외한 다른 당이 모두 협력하면 3분의 2가 된다.

교육계에서는 “예컨대 민주당이 시도지사와 기초자치단체, 지방의회를 모두 장악하고 진보 성향 교육감까지 당선된 호남 지역이 무상급식 도입에 성공하면 결국 전국으로 번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전국이 지역에 따라 유상, 무상으로 갈릴 경우 형평성을 맞춰 달라는 요구가 거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도 ‘초중고교 즉각 전면 실시’를 밀어붙이기보다는 내년에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임기 내 초중학교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고등학교로 확대해 나가는 단계적 전략을 세우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는 6일 “최소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친환경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할 수 있도록 예산안을 짤 생각이다. 중학교도 가능하면 그렇게 할 생각이지만 예산 여건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보수 시도지사와 진보 교육감 사이에 접점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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