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東 同 冬 洞 動 같은 ‘동’인데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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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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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늘어나는 초등학교 한자수업… 학교수업 가보니

최근 다양한 방법으로 한자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서울 추계초등학교 3학년 2반 학생들이 아침자율학습 시간을 활용해 한자급수시험대비 한자공부를 하고 있다.
최근 다양한 방법으로 한자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서울 추계초등학교 3학년 2반 학생들이 아침자율학습 시간을 활용해 한자급수시험대비 한자공부를 하고 있다.
《최근 다양한 방법으로 한자수업을 진행하는 초등학교가 늘고 있다.

한자어로 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시험 때 문제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 아예 풀지 못하는 학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현장에선 주로 아침자율학습시간이나 방과후수업을 활용해 한자수업을 진행한다.

혹은 기존 교과수업시간에 한자공부를 ‘접목’시키기도 한다. 한자수업의 목적도 다양하다.

수업은 주로 △한자를 재미있게 익히도록 하기 위해 △한자공부를 통해 교과내용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한자급수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기 위해 진행한다.

한자교육을 실시 중인 초등학교의 수업모습을 ‘아침자율학습-수업시간-방과후수업’의 시간대별로 들여다본다.》
■ 서울 추계초등학교의 아침자율학습

19일 서울 서대문구 추계초등학교 3학년 2반 교실. 오전 8시 반이 되자 아침자율학습이 시작됐다. 교실 앞 칠판에는 서로 뜻은 다르지만 음이 같은 ‘東’ ‘同’ ‘冬’ ‘洞’ ‘動’ 다섯 글자가 써있다. 이 학급 담임인 유민정 교사가 다섯 글자 중 TV화면으로 보이는 ‘同’의 음과 뜻, 부수를 설명한다.

“오늘 아침자율학습 한자수업에선 ‘동’이란 글자에 대해 배워볼 거예요. 앞에 보이는 ‘동’이란 한자가 포함된 단어는 뭐가 있을까요?”

“선생님, ‘동물’이요.”

“‘동물’이라고 할 때의 동은 ‘움직일 동’이란 한자를 사용해요. 하지만 이건 ‘서로 같다’란 의미의 ‘한가지 동’이에요. 다같이 획순에 맞춰 ‘같을 동’을 써볼까요.”

유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은 “한가지 동”이라 큰소리로 따라 읽으며 손가락으로 허공에 ‘同’을 쓰는 시늉을 했다. 이후 책상위에 준비한 한자급수시험 대비교재에다 필기구로 ‘同’을 6, 7회 반복해 적었다.

추계초등학교는 2006년부터 모든 학년이 아침자율학습시간에 한자급수시험에 대비한 한자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1학년은 8급 시험을 치르며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 단계씩 높은 급수에 도전한다. 학생의 한자실력이 좋으면 해당학년보다 높은 급수의 시험을 치를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같은 학급이어도 서로 다른 한자급수시험에 응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이에 따라 재량활동 시간을 이용해 일주일에 1회씩은 수준별 한자수업이 이뤄진다.

한자를 공부하는 것을 넘어 한자급수시험을 목표로 교육을 진행하는 이유가 뭘까?

이 학교 최성순 교장은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한자공부는 어렵고 지루하다란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하지만 한자급수시험을 목표로 공부하면 동기부여가 돼 학생들이 ‘내 실력을 기르고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한자공부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 서울 한신초등학교의 국어 읽기 수업

같은 날 오후 1시 40분 서울 도봉구 한신초등학교 5학년 1반 교실에선 국어 읽기 수업이 한창이었다. 수업 시작과 동시에 담임 유연철 교사는 칠판에 ‘玲瓏(영롱)’ ‘少年(소년)’ ‘家庭(가정)’ 등 교과서 지문에 나오는 한자로 된 단어 30개를 적었다.

학생들의 책상에는 교과서와 프린트, 그리고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편집해 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보조 자료가 올려져 있다. 보조 자료는 국어 읽기 교과서에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를 한자로 다시 표기해 교과서와 비슷한 형식으로 재구성한 ‘또 하나의 교과서’다. 예를 들어 기존 교과서에 ‘인물들의 삶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란 문장이 있다면 이를 ‘人物들의 삶을 比較하며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라고 다시 표기하는 것. 지문에 포함된 한자어는 물론 학습목표와 문제에 포함된 한자어도 대부분 한자로 다시 표기했다.

한신초등학교는 2004년부터 학생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한자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 같은 ‘한자교육 강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학교 황병무 교장은 “학생들이 아침자습시간에만 한자교육을 받는 것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한자수업을 정규교과과정에 포함시키는 데는 무리가 따랐다”면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한자어가 가장 많이 나오고 한자공부가 기본이 돼야 하는 국어 읽기 수업에 한자어를 한자로 표기한 자료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어휘가 한자로 표기된 교과서를 사용하면서 한자공부가 더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을까? 오히려 국어 교과서에 나온 학습목표나 지문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 한자공부 뿐 아니라 국어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학생들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자급수시험 준3급을 딴 후 올해 3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이 학교 6학년 3반 정하림 군(12·서울 도봉구)은 “국어 읽기 시간에 보조 자료만 쓰는 것이 아니라 한글로 표기된 교과서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어려움 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면서 “따로 한자공부에 시간을 투자할 필요 없이 수업시간 중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어 한자급수시험 대비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1시 반 경기 양평초등학교 제1컴퓨터실에선 방과후수업인 ‘한자마루반’ 수업이 진행됐다. 한자마루반은 교육용 온라인 게임 프로그램을 활용해 한자를 공부하는 수업. 양평초등학교는 지난해부터 이 반을 개설하고 2년째 운영중이다.

“여러분, 오늘 수업에선 ‘8급 2호 레벨’을 플레이(게임을 하는 것을 뜻하는 말)한 후, 게임에 나온 한자를 쓰기장에 한 번씩 써보세요.”

김윤희 담당교사가 오늘의 ‘미션’을 말했다. 학생들은 한자게임을 하기 전 지난주 수업에서 익혔던 한자를 쓰기장에 다시 한 번 쓰기 시작했다. 수업 2시간 중 게임을 하는 시간은 30분. 학생들은 마우스와 키보드를 이용해 게임 속 캐릭터를 재빠르게 조작하며 게임에 집중했다. 이날 게임에선 ‘할아비 조(祖)’ ‘아버지 부(父)’ 등 가족 관련 한자들이 등장했다.

이 수업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한자공부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는 것. 게임에만 그치지 않도록 쓰기장을 활용해 게임 전 복습과 게임 후 확인학습을 반드시 진행한다. 김 교사는 “게임시간이 제한돼 있어 하루에 한 시간 반 이상 게임한 학생은 사이트 접속이 자동 차단된다”면서 “대부분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치르는 한자급수시험에서 급수를 올리는데도 자연스레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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