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e TOWN]길 오갈때도 일기 쓸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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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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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간판… 학교 이름… 유심히 보고
‘父母님과 食堂서… ’ 배운글자 활용

初等 4學年이 漢字 1級… 김형주 군의 達人秘法

중학교 1학년 최모 군(13·서울 성북구)은 첫 중간고사 시험에서 ‘서술형 문제’를 본 순간 당황했다. “위 그림에 나타난 기후 지역의 가옥의 특징을 서술하시오”라는 문제에서 ‘가옥’이 뭔지 알 수 없었기 때문. 결국 최 군은 답을 적지 못했다. 최 군이 문제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이유는 뭘까? 문제 속에 한자로 된 어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천 부평구 부내초등학교 4학년 김형주 군(10·사진)은 얼마 전 과학시간에 선생님이 ‘사행천(蛇行川)’에 대해 물었을 때, 처음 들어본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정답을 알 수 있었다. “사행천이란 말을 들었을 때, ‘천’은 내 ‘천(川)’자가 떠올랐어요. ‘행’은 다닐 ‘행(行)’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사’는 뱀 ‘사(蛇)’ 같단 생각에 ‘뱀처럼 흐르는 강’이 뭔지 상상해보니까 ‘강이 뱀처럼 구불구불 휜 상태로 흐르는 지형’이란 걸 알 수 있었어요.”(김 군)

한자 학습에 대한 중요성 때문에 한자급수시험에 응시하는 초등학생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1급 시험에 합격한 초등학생은 흔치 않다. 한자급수시험에서 1급을 따기 위해선 3500자를 읽고 2000자를 쓸 줄 아는 실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김 군은 올해 2월 한자급수시험에서 1급을 받았다. 김 군은 어떻게 한자를 공부했을까? “유치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한자를 가르쳐줬는데, 여인(女人), 왕자(王子) 인구(人口)와 같은 단어를 배웠어요. 시옷(ㅅ)이나 네모(口)처럼 생겼는데 사람이랑 입을 뜻한다고 하니까 한자가 신기했어요.”(김 군)

7세 때 한자를 배우는 재미에 빠진 김 군은 한자급수시험 문제집으로 한자 공부를 시작했다. 한자급수시험 문제집을 통해 유형별로 나눠진 한자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군은 문제를 풀기 전에 시험에 나오는 한자를 정리해 놓은 부분부터 공부했다. 6급 시험을 준비하면서 김 군은 쓰기 문제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매일 1시간씩 80문제씩 공부해 결국 6급에 합격했다.

“한자를 직접 쓰거나 뜻과 음을 소리 내서 읽기 전에 한자의 생김새를 본 다음 머릿속으로 뜻을 생각하면서 외우면 잘 외워져요.”(김 군)

김 군은 한자를 공부할 때 그림을 연상했다.

“쉴 ‘휴(休)’자는 사람 ‘인(人)’자와 나무 ‘목(木)’으로 나눠서 사람이 나무에 기대서 쉬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외웠어요.”

김 군은 초등 1학년 때 한자 관련 퀴즈의 정답을 맞히면 상금을 주는 퀴즈쇼를 보면서 ‘나도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자 퀴즈쇼에 나가기 위해 김 군은 매주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한자를 공부했다. 혹시나 퀴즈에 문제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길을 걷다가도 식당(食堂)이나 학교(學校) 같은 한자 간판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김 군은 “어떤 학교 교문에는 한자로 학교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어려운 한자가 많다”며 “모르는 한자가 있으면 모양을 기억해 두고 집에 와서 옥편에서 음과 뜻을 찾아보고 국어사전으로 찾은 한자가 포함된 단어의 의미를 다시 확인한다”고 말했다.

김 군이 한자를 공부하는 데는 어머니 박삼례 씨의 도움이 컸다.

“문제집에 나온 한자 한 개당 2∼3분 집중해서 본 다음 잘 외웠는지 확인해 달라고 가져와요. 그럼 저는 책받침으로 음과 뜻을 가린 후에 아이가 잘 외웠나 확인해주기만 했어요.”(박 씨)

어머니의 검증을 마친 김 군은 1회 분량 문제를 풀었다. 틀린 문제가 있으면 김 군은 4회 반복해서 풀었다. 문제집을 여러 권 풀기보단 한 권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

초등학교 1학년 때 김 군은 5급 시험에 도전했다. 4개월마다 한 단계씩 급수를 올린 김 군은 5∼3급까지 한번에 통과했다.

김 군은 초등학교 2학년 때 2급 자격증을 땄다. 한자를 배우기 시작한 지 2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이뤄낸 성과였다.

“급수 시험을 볼 때마다 더 높은 급수 시험을 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1급에 합격하고 싶어서 좋아하는 게임도 자제했어요.”

그러나 2급에 합격할 때까지만 해도 한자급수시험에 떨어져본 적이 없었던 김 군이지만 1급에 합격하기 위해선 시험을 4회나 더 봐야만 했다. 120개 문제를 맞히면 합격인데 118개만 맞히거나, 바뀐 문제 유형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학 땐 낮에 친구들과 놀아야 하기 때문에 오전 6시 반에 일어나서 공부를 했어요. 하루에 450∼600문제를 풀었어요. 초반에는 1회를 푸는 데 70분 정도가 걸렸지만 나중에는 30분으로 줄었어요.”

김 군은 잘 외워지지 않거나 헷갈리기 쉬운 글자는 따로 정리해서 외웠다. 특히 꾸짖을 ‘갈(喝)’자나 다할 ‘갈(竭)’ 그리고 굵은 베옷 ‘갈(褐)’처럼 음은 같은데 모양이 비슷해서 착각하기 쉬운 한자는 파란색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고 TV보다가도 잠깐씩 보면서 익혔다. 올해 2월 김 군은 1급에 합격했다.

김 군은 문제를 풀며 배운 한자를 일기를 쓸 때 활용했다. ‘父母(부모)님과 食堂(식당)에서 外食(외식)을 했다’처럼 한자로 바꿀 수 있는 단어는 모두 한자로 썼다.

김 군은 “한자실력을 기본으로 중국어를 배울 계획을 갖고 있다”라며 “부모님의 권유로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게 됐는데 법을 공부할 때 한자실력이 많이 도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석교 기자 stay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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