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되려면 ‘北 건국과정’까지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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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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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급공채 ‘한국사’ 논란
행안부 “출제시스템 전면 개선”

지난해 4월 실시된 9급 공무원 공채시험 한국사 19번 문제 내용. 이 문항은 광복 이후 북한의 역사를 자세하게 알아야 풀 수 있도록 구성됐다. 자료 출처 행정안전부
지난해 4월 실시된 9급 공무원 공채시험 한국사 19번 문제 내용. 이 문항은 광복 이후 북한의 역사를 자세하게 알아야 풀 수 있도록 구성됐다. 자료 출처 행정안전부
공무원 공개채용 시험 ‘한국사’ 과목에 북한의 건국 과정을 묻는 문제가 출제됐던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18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실시된 9급 공채시험 한국사 ‘녹’형 19번으로 ‘6·25전쟁 이전 북한에서 일어난 다음의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이라는 문제가 나왔다. 보기로는 ‘북조선 5도 행정국 설치’ ‘토지개혁 단행’ ‘북조선 노동당 창당’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조직’ 등이 제시돼 김일성의 집권 과정을 시기별로 정확히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다.

당시 시험에 응시했던 A 씨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 대한 문제도 얼마든지 출제할 수 있었을 텐데 20문항밖에 안 되는 한국사 시험에서 북한 역사를, 그것도 세밀한 내용까지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공무원 시험 문제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학과 교수도 “6·25전쟁을 일으킨 주체를 잘못 알고 있는 국민이 적지 않을 정도로 국가 정체성이 혼란한 시점에 공무원 선발 시험에서 북한의 건국 과정까지 세밀하게 물어보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공직 시험일수록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문제가 출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북한 역사도 한국사의 일부이고, 대학에서도 북한사를 배우고 있는데 공무원 채용 한국사 시험에서 북한 역사를 물어봤다고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공무원 시험에서 정치적, 이념적 논란의 소지가 있는 문제가 출제되자 행안부는 국가고시 출제 시스템을 전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문제의 내용도 문제지만 검증 과정이 소홀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공무원 채용 시험은 행안부가 직접 박사학위를 소지한 조교수급 이상 대학교수를 출제위원과 문제 선정위원으로 위촉해 치러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출제위원 선정을 위한 별도 위촉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문제 출제 이후에는 감수위원이 출제의 적정성을 검토하도록 개선하겠다는 내용이다. 김성겸 행안부 시험출제과장은 “특정 이념에 치우친 문제를 포함해 사회적 논란이 예상되는 문제가 출제되지 않도록 검증과정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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