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에세이]인간의 습성을 알면 환경정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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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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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미국 뉴욕 법정에 섰다. 이 여인은 이웃에 사는 9개월 된 아기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고소당했다. 그러나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고소당한 여인은 아이에게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하는 열혈 엄마. 하지만 그는 자식의 예방접종만은 거부했다. 예방접종을 통해 나타날지 모를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그의 아들은 홍역에 걸렸지만 금세 나았다.

하지만 옆집 아기는 운이 좋지 못했다. 예방접종을 받기에 너무 어린 나이였던 아기는 여인의 아들에게 전염돼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기 엄마는 예방접종을 하지 않고 홍역에 걸린 아들을 밖으로 내보낸 옆집 엄마가 아기를 죽게 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 재판이 벌어진 것이다.

‘로 앤드 오더 : SVU’라는 한 수사드라마에서 방송된 내용이다. 하지만 허구라고만 생각하기엔 파장이 묵직하다. 예방접종은 유아사망률을 급격히 낮췄다. 또 대규모 전염병의 유행을 억제시키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1998년 한 의사가 MMR 백신(홍역-볼거리-풍진 예방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예방접종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올해 1월 28일 영국일반의학위원회는 2년 반에 걸친 심의 끝에 이 주장은 부정직하고 무책임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해당 논문도 폐기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시작된 백신 거부 운동은 아직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회 속 개인과 집단의 이익은 맞설 수 있다. 공중보건을 위해선 모든 구성원이 백신을 맞아야 한다. 하지만 드물더라도 부작용이 있다면 개인 입장에선 안 맞는 것이 좋다. 단 이런 선택은 본인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모두 백신을 맞을 경우라는 단서가 붙는다. 모든 이들이 백신을 거부한다면 전염병이 유행할 것이다. 결국 모든 이들이 백신을 맞아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개인의 이기심은 확실하지도 않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만으로 간단히 공공의 선(善)을 거스르곤 한다.

많은 환경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인간 습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일회용품 사용, 오염물질 방류 등 공공 환경을 해치는 일이 개인에게는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개인의 딜레마는 계속된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 동감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는 이 때문이다. 따라서 환경 정책은 공공의 선과 개인의 선 사이의 간극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이은희 씨는 글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젊은 과학도. 기업연구원, 과학전문기자를 거쳐 과학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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